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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봉준호의 쾌거, 이제 K무비 차례다

'기생충'아카데미상 휩쓸어
콘텐츠산업 혁신 기회 삼길

봉준호 감독(51)이 일을 냈다. 그가 연출한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100년에 가까운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 작품이 세계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 이런 갈채를 받기는 처음이다. 봉 감독은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새겼다.

봉 감독은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봉 감독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온 세상이 공감하는 빈부격차 문제를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다뤘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뒤 미국에선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2013년 '21세기 자본'에서 빈부격차가 자본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2019년에 나온 봉 감독의 '기생충'은 같은 맥락에서 지구촌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그리고 마침내 아카데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것이 그 증거다.

마침 할리우드는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백인·남성 위주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중이다.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수천명 회원을 두고 있다. 비밀에 가려진 이들 회원이 투표로 수상작을 뽑는다. 지난 몇 년간 AMPAS는 여성과 유색인종 회원을 늘렸다. 아카데미상을 미 국내용 잔치에서 세계적인 축제로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도 있다. '기생충'은 이러한 변화에도 잘 들어맞았다.

이미 K드라마와 K팝이 대표하는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K팝에선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팝의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자리를 굳혔다. 이제 '기생충'을 필두로 K무비가 나설 차례다. 한국 영화는 칸·베니스·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에서 성가를 높였다. 철옹성이던 미국 아카데미도 끝내 넘어섰다.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백만대를 파는 만큼 수익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과장은 있지만, 콘텐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로는 손색이 없다.


참여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자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했다. 하지만 보호막이 없어진 뒤 오히려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봉준호 쾌거'는 콘텐츠의 진정한 힘은 규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