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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소송' 코너 몰린 SK이노베이션…남은 시나리오는

'배터리 소송' 코너 몰린 SK이노베이션…남은 시나리오는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배터리 소송' 코너 몰린 SK이노베이션…남은 시나리오는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전시된 전기차 배터리(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News1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을 맡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 측에 '조기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팽팽했던 소송전의 양상이 급변했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접기엔 잃을 게 너무 많은 만큼, 최종 패소를 피하기 위해 조만간 LG화학과 합의할 전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ITC가 맡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예비 결정(조기패소 등)이 최종 결정에서 뒤집힌 경우는 지난 1996년부터 현재까지 25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10월 최종 결정까지 간다면 SK이노베이션은 패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패소 판결이 확정되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요청한대로 배터리 부품·소재 등을 미국으로 수입할 수 없어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을 할 수 없게 된다. SK가 현재까지 미국 배터리 공장에 이미 투자했거나 검토 중인 금액은 총 3조원인데, 이를 유지하려면 LG화학과 합의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일각에선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려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을 위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가능성은 낮다. LG화학도 GM과 배터리 생산을 위한 조인트벤처(JV) 설립을 통해 미국 투자를 진행 중인데다가, 3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에서 대책없이 미국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하나만 바라보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별건인 특허소송을 그대로 진행해 승소를 노릴 수도 있지만, 최종 패소할 경우 미국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는 만큼 LG화학과의 적극적인 협상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6일 조기패소 결정 이후 LG화학에 대해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언급하는 등 전쟁보다는 합의를 시사하기도 했다.

합의 방식으로는 '로열티 지급'이 거론된다. 지난 2017년 LG화학은 ITC에 중국의 배터리 기업인 ATL을 특허 침해로 제소했는데, 매년 미국에서 발생하는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매출액의 3%를 로열티로 받기로 하고 최종판결 전에 분쟁을 해결했다. 이번 SK이노베이션과의 분쟁도 이 방식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배상금과 LG화학의 특허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도 있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합의 금액은 5000억~1조원 사이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떤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그 비밀의 적정 가치를 어떻게 계산해 얼마로 산출할지 등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다른 만큼 배상금 규모는 현재 거론되는 수준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이번 ITC의 조기패소 결정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소송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업계는 지난해 4월 이후 양측이 지금까지 소송 비용으로 총 2000~3000억원을 지출했다고 본다. SK 입장에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매일 수십억원씩 쏟아부었지만, 합의한다면 당장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그 끝이 보이는 셈이다. LG화학 역시 보유 기술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하기까지는 도달하는 숙제가 남았다. 양측은 지난해에도 합의를 위한 실무진·CEO 협상을 진행했지만 의견이 갈리며 무산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엔 양측의 입장이 대등했기에 협상 결렬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LG화학 쪽으로 기울었다"며 "이제 SK는 합의할 수밖에 없고 LG도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입장인 만큼, 조만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