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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경제대책에 위기의식이 안 보인다

오히려 美서 금리인하 공방
메르스급으로 보면 큰 오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을 대놓고 비판했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가장 낮은 기준금리를 가져야 한다. 연준의 금리는 높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에도 "연준이 빨리 개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과 자주 충돌한다. 특히 자신이 임명한 파월 의장과 사이가 나쁘다. 기대와 달리 파월이 금리인하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통상 여건이라면 트럼프는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연준을 비롯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정치적 중립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세상에 고금리를 바라는 정치인은 없다. 따라서 정치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도 한국은행법에서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보장한다(3조).

하지만 비상시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 집착하다 자칫 경제 자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금융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중앙은행 모델을 세웠다. 과거 제로금리나 양적완화(QE)는 연준의 정책 리스트에 있지 않았다. 대공황 연구자인 버냉키는 과감하게 비전통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 덕에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었다.

사실 파월 의장도 '샌님'은 아니다. 그는 지난달 28일 연준 홈페이지에 올린 긴급성명을 통해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절하게 행동하고 우리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시장에 알렸다. 성명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제활동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면서 "연준은 상황 진전, 경제전망에 미치는 함의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게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 셈이다.

미국 대통령과 연준 의장이 코로나19 대책을 놓고 갈등을 빚는 모습은 우리 눈엔 차라리 부럽다. 사실 미국은 주요국 중 전염병 영향을 가장 덜 받은 나라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코로나 요주의 국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 한은이 내놓는 경제대책은 지극히 미온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주열 한은 총재가 함께 만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만약 정부와 한은이, 코로나19 사태가 과거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일과성 충격에 그칠 걸로 여긴다면 큰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