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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100조원 기업 살리기, 실속이 문제다

금융사에 부담 떠넘겨
현장 집행은 지켜봐야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을 살리는 100조원짜리 긴급구호 프로젝트를 내놨다. 규모가 당초 50조원에서 배로 커졌다. 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고 말했다. 기업이 무너지면 실업자가 쏟아져 나온다. 20여년 전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이다. 비슷한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조달러(약 2500조원) 크기의 부양을 추진 중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수준이다. 또 연방준비제도는 23일(현지시간) 무제한 양적완화(QE)를 선언했다. 연준은 심지어 민간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도 매입하기로 했다. 연준은 금융위기 때 기업어음(CP)을 사들인 적이 있다. 하지만 회사채 매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23일 연준이 "시장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례 없는 행동(never-before-attempted actions)'을 취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지원 규모를 100조원으로 늘린 것은 잘한 일이다. 사실 여기에 추경 11조7000억원을 더해봤자 한국의 부양 규모는 GDP(2018년 기준 2160조원)의 5%밖에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경제위기를 '미증유의 비상경제 시국'으로 규정하면서 '전례 없는 대책'을 주문했다. 100조원은 대통령의 위기의식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문제는 100조원의 내역이다. 총평하자면 정부는 금융 공기업과 민간 금융사에 긴급자금 공급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넘겼다. 예컨대 20조원짜리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보면 은행,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산업은행 등 84개 금융사가 출자 부담을 떠안았다. 10조7000억원짜리 증권시장안정펀드는 5대 금융지주와 각 업권을 선도하는 18개 금융사, 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 몫으로 배정됐다. 이러니 정부가 남의 돈으로 생색만 낸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미국은 다르다. 전적으로 재무부와 연준이 총대를 멘다. 민간 금융사에 짐을 떠넘기지 않는다. 사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지금 금융사들은 제 코가 석자다.
향후 100조원 프로젝트가 현장에서 신속히 집행되지 않는다고 불평이 터져나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역을 뜯어보니 기업구호긴급자금은 어쩐지 과잉포장된 상품 같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좀 더 실속 있는 대책을 추가로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