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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불똥 튄 블록체인 업계 시름..."악용이 문제" 지적

비트코인, 이더리움, 모네로 n번방 입장료로 쓰여
"수단은 후차문제…범죄는 그 자체로 봐야" 한목소리
"블록체인 서비스 대중화 전력 시점에 답답" 토로도 

[파이낸셜뉴스]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 및 인권유린 영상을 유포한 n번방이 채널 입장료로 사용자에게 가상자산을 수취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비트코인 투기 광풍으로 찍힌 사회적 낙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사회문제의 중심축으로 연루되며 블록체인·가상자산 서비스 대중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는 것이다.

■"범죄 사안 그자체로 봐야"

'n번방' 불똥 튄 블록체인 업계 시름..."악용이 문제" 지적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n번방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에 블록체인·가상자산 업체들은 범죄 사안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n번방 사건에 모네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이 활용된 것이 알려지며 가상자산의 익명성이 범죄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블록체인·가상자산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은 "가상자산을 악용한 범죄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대중적으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한 상황에서 가상자산을 악용한 사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 2월 자체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는 "산업에 드리운 부정적 이미지는 개별 기업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며 "지난 2년여간 서비스 개발에 매진해 이제 대중화에 전력을 쏟을 시점에 이런 사건이 터져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서비스 출시를 앞둔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 또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으로 사업적 활동을 일체 자제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중대 범죄와 가상자산이 연결돼 답답하다"며 "지불수단으로 가상자산이 쓰인 것은 후차적 문제이고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은 사안 그 자체로 봐 주셨으면 한다"고 답했다.

■가상자산 유통경로 역추적 가능

업계는 이번 n번방 사건에서 주 거래 가상자산으로 쓰인 다크코인 모네로를 추적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모네로 특성상 가상자산을 여러 지갑주소로 믹싱하듯 나눠 유통하지만 컴퓨팅 파워를 대량 투입해 역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확인하면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정석문 사업개발팀장은 "비트코인이 범죄를 키웠다는 것은 신용카드가 가계 빚을 늘려 사람을 망하게 한다는 논리와 같다"며 "다크코인 중에서도 수신자와 발신자를 숨기는 익명성 기능을 넣은 경우가 있는데, 이때 거래소가 익명성을 금지하는 옵션을 사용하면 다크코인이라 할지라도 비트코인처럼 모든 거래내역이 투명히 공개된다"고 설명했다.

인호 고려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 주범이 가상자산을 작게 쪼개 여러 지갑으로 섞어 전송했다고 해도 어차피 디지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원 출처를 추적할 수 있고, 거래소 신분확인(KYC)을 통해 사용자 파악이 가능하다"며 "가상자산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각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위축 우려도

이번 사건이 혹여 블록체인·가상자산 사업자의 설 곳을 더욱 줄어들게 만들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미 블록체인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 중 은행 등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몇몇 곳들은 평소에도 대외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또, 최근 투자설명회(IR)에선 벤처캐피탈(VC)들이 가상자산이 아닌 블록체인 얘기만 나와도 꺼린다는 업계 후문도 나온다.

지난 2017년 대형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던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는 "가상자산이 n번방 사건을 키웠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며 "비트코인이 해당 범죄에 쓰였어도 이를 현금화하려면 무조건 정부 통제 아래 있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용자 신원이 드러나는 은행 거래와 매한가지인데, 가상자산이 쓰였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일반화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또,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가상자산을 통제하려는 정부 방침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내년 3월 특금법 실행전까지 시행령 제정 작업을 모두 완료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시행령 세부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FIU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규제조항에 힘을 싣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것이다.

srk@fnnews.com 김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