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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나라 곳간은 빚더미, 정치권은 퍼주기

재난지원금 선심 경쟁
'허경영 흉내' 자조마저

정치권이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경쟁을 본격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6일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공언했다.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기로 한 당정청 결정을 뒤집으면서다. 앞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도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을 제안했다.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생활고를 겪는 계층부터 배려해야 한다는 당론을 번복한 셈이다. 여야가 4·15 총선 코앞에서 대놓고 인기영합 경쟁을 벌이는 꼴이다.

사실 현금을 그냥 쥐여준다는데 마다할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나. 또 소득별 지급기준을 정하느라 시간이 걸리면 '긴급' 지원이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이 '보편적 지원'으로 선회한 배경이 극히 정략적이어서 문제다. 당정청의 '소득 하위 70%에 최대 100만원 지급(4인가구 기준)안'이 형평성·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생긴 부정적 파장이다. 야당이 당정청의 선제 선심공세의 빈틈을 찾아 '전 국민 지급안'을 내놓자 상위 30% '표심' 이반을 우려하던 여당이 맞불을 놓으면서다.

이는 지급기준 선별 과정에서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손쉽게 전 국민에게 퍼주는 결정을 내린 형국이다. 재정건전성이나 미래세대의 부담 등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앞뒤 안 가리고 현금살포 경쟁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니 정치권 일각에서조차 "주요 정당 모두 허경영의 국민혁명배당금당을 뒤쫓고 있다"는 자조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포퓰리즘 경쟁에 국가재정이 배겨낼지 의문이다. 지난해 국가부채(1743조여원)와 국가채무(728조여원)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통계를 보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당정청 회의에서 소득 하위 70%에 최대 100만원 지급하기 위한 재원조달조차 쉽지 않다고 한 말이 엄살은 아니다. 민주당은 "추경 증액으로 4월 내", 통합당은 "예산 항목조정을 통해 선거 전 지급"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라 곳간이 거덜나고 있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코로나19의 파장이 얼마나 크고 길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무너지는 기업이나 생계를 위협받는 계층에 대한 지원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앞으로 2차, 3차 '코로나 경제위기'까지 내다본다면 각 정당이 지금 무턱대고 포퓰리즘 경쟁을 할 계제가 아니다. 여야는 '지원금 규모' 경쟁을 지양하고, 진정성을 갖고 가용재원 조달방안부터 논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