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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코로나 위기 대응, 오히려 한은이 믿음직하다

성장률 전망 0%대로 낮춰
현실적인 대책 속속 내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올해 한국 경제가 플러스 성장은 하겠지만 1%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올해 0%대 성장률을 예측한 셈이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뒤에 열린 인터넷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그것도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으로 2·4분기에 진정되고 하반기에 경제활동이 점차 개선된다는 전제를 깔았다.

한은은 지난 2월말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1.25%)함으로써 시장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3월 16일 임시 금통위를 기점으로 확 달라졌다.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대폭 낮춘 데 이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착수했다.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증권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사에 직접 대출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나아가 이 총재는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9일 이 총재는 "금리 여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정책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한은의 움직임은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걸맞은 행보다.

그에 비하면 정부의 발걸음은 굼뜨다. 한은이 제안한 회사채 보증 방안에 대해서도 진전이 없다. 지난달 한은 윤면식 부총재는 정부가 회사채를 보증하면 한은이 이를 매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9일 이 총재 역시 한은이 회사채를 매입할 것이냐는 물음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처럼 특수목적법인(SPV)을 정부 보증하에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가 크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사주면 기업에 큰 숨통이 트인다. 이는 한국은행법을 염두에 둔 제안이다. 제68조는 한은이 국채,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유가증권을 매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한은법 68조를 보면 '그 밖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유가증권'도 한은이 매매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는 정부보증만이 회사채 매입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는 회사채 매입 방안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묘안을 도출하길 바란다.

정부가 빛바랜 올해 성장률 전망치(2.4%)를 고수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한은이 당초 2.3%에서 1% 아래로 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성장률 전망치는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윤증현 당시 기재부 장관은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로 무려 5%포인트나 낮췄다.
그 뒤 비상대책이 속속 나왔다.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은 오히려 한은이 앞서고 정부가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예전에 볼 수 없던 진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