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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文정부 기업 구조조정, 방향은 잘 잡았다

40조원 안정기금 설치
일단 살리는 게 급선무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을 조성하고, 한국판 뉴딜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안정기금은 핵심기업 살리기가 목적이고, 뉴딜은 신규 일자리 창출이 목표다. 문 대통령의 파격적인 결정을 환영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는 대공황급이다. 대책도 그에 걸맞게 짜는 게 맞다.

문 대통령은 "기간산업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한다. 항공, 자동차, 조선, 정유산업 등은 제조업 강국 코리아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일자리도 와르르 무너진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은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말했다. 국회가 기금 조성에 적극성을 보이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40조원의 용도에 대해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을 넘어 출자나 지급보증 등 가능한 지원 방식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선례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에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사실상 GM을 국유화한 셈이다. 그 덕에 GM은 금융위기라는 죽음의 계곡을 건넜다.

다만 문 대통령은 기업에 지원 조건을 걸었다. 상응하는 의무로 고용 총량 유지, 자구 노력, 이익 공유 등을 거론했다. 공적자금 지원엔 늘 고통분담 요구가 따른다. 대기업 특혜 논란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당연히 세금을 수혈받는 기업이 사회에 보답하는 게 옳다. 다만 코로나 경제위기는 기업 잘못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기업이야말로 이번 위기의 최대 피해자다. 항공·여행업은 지난해 일본 여행 보이콧에 이어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다. 안정기금의 목표를 기업을 살리는 데 둬야지 대기업을 혼내는 데 두어선 곤란하다.

한국판 뉴딜은 실업자 구제용으로 바람직하다(본지 4월3일자 사설 '다시 나온 정리해고, 한국판 뉴딜 검토하길' 참조). 지난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일자리를 위해 2조달러짜리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대공황 직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편 뉴딜을 본딴 것이다. 토목공사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공사 현장만 한 게 없다. 건설 부양에 부정적이던 문 대통령의 발상의 전환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번 경제위기는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가 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자국 이익만을 내세우는 경제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 걸로 내다본다.
개방은 퇴조가 불가피하다. 세계화 수혜국인 한국 경제에 거대한 장벽이 세워지는 셈이다. 당장은 살아남는 게 급선무고, 길게는 탈세계화 시대에 한국 경제가 살아갈 방도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