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산으로 간 재난지원금, 국민에 책임 넘겨서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22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되 고소득자로부터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준 돈을 다시 걷어들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이 재난지원금 지급범위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한 셈이다. 하지만 미봉책이란 인상도 든다. 지원금을 받을지 말지 여부를 국민의 선택에 맡긴 꼴이라서다.

절충안의 맹점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당정의 온도차가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가구 기준)씩 주자는, 기획재정부 원안에 비해 3조3400억원이 더 소요되는데도 구체적 재원조달 방안이 안 보여서다. 민주당은 세액공제 혜택으로 1조원가량의 기부금을 마련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세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건 고사하고 부화도 하기 전에 병아리 세는 격이 아닌가. 혹여 기부를 택하지 않은 국민을 비난의 제물로 삼아 '관제 기부'를 유도하려는 발상이라면 더 큰 문제다.

물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여당의 충정도 이해는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생계를 위협받은 국민을 향한 총선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비진작을 통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정책수단이란 논리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코로나 경제 충격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금은 가늠조차 힘들다. 더 큰 쓰나미에 대비해 재정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재부의 관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유다.

재정부담 능력은 곳간 열쇠를 쥔 정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공약을 이행할 수 없을 만큼 재원이 모자란다면 국민에게 진솔히 양해를 구하는 게 정도다. 이제 와서 선거에서 참패한 야당과의 합의를 전제로 전 국민 지급을 추진하겠다는 것도 책임 떠넘기기로 비친다.
미래통합당도 예산항목 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자며 전 국민 지급을 공약했지만, 국채 발행 등 여당안과는 접근방법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팻말이 놓여 있었단다. 재난 지원금 지급 범위는 당정이 장기적인 재정여력을 숙고해 결정할 일이지 국민에게 공을 넘겨 논란이 이어지도록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