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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간산업 국유화 우려를 씻으려면

금융위기 때 GM이 모델
美 재무부가 경영권 보장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6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대가로 경영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 취득한 주식 등의 증권은 이익공유를 위한 것이지 의결권 행사를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24일 "기업의 국유화는 없을 것"이라며 "주식연계증권의 전환권 행사 등으로 보통주를 일부 취득하게 되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넓게는 국유화, 좁게는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는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 뒤에 나왔다. 이날 문 대통령은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계획을 밝히면서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을 넘어 출자나 지급보증 등 가능한 지원방식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을 쓰는 일인 만큼 "정상화 이익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안정기금 설치를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24일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출자로 취득한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정부와 재계 간 신뢰가 두텁지 못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금융위기 때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사례는 롤 모델로 삼을 만하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510억달러(약 63조원)를 GM에 투입했다. 지원은 대출, 보통주, 우선주 등 여러 형태로 이뤄졌다. 한때 재무부 지분율이 60%를 넘어서자 '거버먼트 모터스'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지만 재무부는 GM 경영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그 대신 2010년 이른바 뉴GM이 기업공개(IPO)를 할 때 지분을 대거 처분했고, 2013년 12월에 남은 지분을 다 팔았다. 회수한 돈은 390억달러에 그쳐 재무부는 120억달러가량 밑졌다. 하지만 GM 구제금융은 일자리 120만개를 살리고, 350억달러의 세수증대 효과를 낳은 덕에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은 사실상 공적자금이다.
국민 세금을 쓰는 데 조건이 붙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정부는 국유화나 경영간섭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깊이 고려해주기 바란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가 출자는 우선주로 제한하고, 의결권 행사 금지를 아예 법안에 못 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