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KDI 증세 제안, 文대통령이 유심히 살피길

국채는 미래세대에 짐
세상에 공짜복지 없어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증세 논의를 제안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20일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KDI는 2020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지출구조조정과 함께 재정 수입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대안 모색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대안은 곧 증세다. KDI의 제안은 늦었지만 반갑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책 연구기관이란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증세 필요성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코로나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천문학적인 추가 재정을 동원했다. 2차 추경에 이어 3차 추경도 코앞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이야기도 나왔다. 일각에선 기본소득 아이디어까지 나온다. 뭘 하든 다 돈이다. 하지만 국채를 찍어 재정을 펑펑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설 게 확실하다. 국채는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빚이다. 책임 있는 기성세대가 할 짓이 아니다. 그 대안이 증세다.

증세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편가르기식 부자 증세가 아니라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소비세) 전반을 손보는 대대적인 세정개혁이 필요하다. 부가세의 경우 1977년 도입 이래 43년째 세율이 10%로 묶였다.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현행 저복지·저부담 구조를 중복지·중부담 구조로 바꾸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 증세는 수혜자 부담 원칙에도 부합한다.

누구나 북유럽식 복지를 부러워한다. 진실은 이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스웨덴의 국민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9%에 이른다. 같은 해 한국(28.4%)보다 15%포인트 이상 높다. 국민부담률은 세금과 사회보험료(국민연금·고용보험 등)를 합친 개념이다. 스웨덴 복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정직한 정부라면 증세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용감한 정부라면 선거에서 유불리를 떠나 국가재정을 튼실히 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언제까지 국채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새로 출범할 21대 국회는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지만 있으면 세제개혁도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 적어도 수십년 나라 기틀을 바로잡는 일에 문 대통령이 리더십을 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