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미·중 신냉전, 대중 수출의존도부터 줄여나가야

코로나 팬데믹 속에 미·중 갈등이 격화일로다. 특히 군사·전략적 가치를 갖는 반도체산업을 놓고 양국이 전면 대치하면서 냉전기의 경제블록이 재현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국에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축방안을 제안, 논의했다고 20일 (현지시간) 밝혔다. 키스 크라크 국무부 차관이 전화 브리핑을 통해서다. 한국으로선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중차대한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코로나 경제충격파에 이어 신(新)냉전이란 또 다른 변수가 돌출할 조짐은 진작 감지됐다. 미국이 우호국들을 대상으로 화웨이 조달망을 차단하려는 초강수를 두면서다. 이에 중국은 자국 반도체 생산업체에 3조원 규모 국영펀드를 추가 투자하고 퀄컴, 애플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법 관련 조사설을 흘리며 맞섰다.

EPN은 일종의 미국 주도 '경제동맹'이다. 우호국과 그 기업들을 한데 묶어 가치사슬을 만들고,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빼겠다는 취지다. 크라크 차관의 발언은 한국의 EPN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우리로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가뜩이나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 데다 경제 냉전이 반도체시장에서부터 시작되면서다. 화웨이 제재가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는 중장기적으로 기회일 수도 있지만, 당장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SK에는 리스크 요인이다.

이제 미·중 간 포스트 코로나 패권 다툼의 서막은 열렸다. 그래서 우리의 정교한 장단기 대응전략이 중요하다. 중국으로부터 당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악몽을 떠올린다면 아직 EPN 참여를 공언하긴 이르다. 지금으로선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중국과의 협력 구도도 다지는 양수겸장이 불가피하다.

다만 장기적으론 글로벌 경제의 '빅 픽처'를 내다보며 대비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의 '기술냉전'적 속성을 직시하면서다. 혹여 장차 미국보다 중국이란 불투명한 사회주의체제에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이 넘어가면 더 큰 화근을 맞을 수도 있다.
중국이 우리뿐 아니라 주변국들을 대상으로 경제·안보 양면에서 조폭식 위협을 가한 적이 한두 번이었나. 경제 냉전에서 미국의 승산이 더 높다면 중국 눈치만 보며 어물어물할 이유는 더욱 없다. 문재인정부도 미·중 반도체대전을 25%에 이르는 대중 수출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전략적 선택의 순간 우리의 운신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