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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전시재정 주문한 文대통령, 증세는 함구

재정 총동원 공감하지만
빚내서 흥청망청은 곤란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전시재정'을 주문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문 대통령은 "전시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정치권에 "1, 2차 추경을 뛰어넘는 3차 추경안이 6월 중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의 인식에 공감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처럼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나라에 돈을 더 풀 것을 권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장이 고꾸라졌다. 기업들은 생존이 급하다. 고용참사는 현실이 됐다. 크게 보면 시장실패다. 이럴 땐 정부가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경제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경제회복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우리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싶다. 재정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아시아 최고 수준(무디스 Aa2)으로 매기는 데는 건전한 재정이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소중한 자산을 함부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

3차 추경을 30조~40조원 규모로 짜면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선에 닿는다. 원래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 비율을 39.8%로 묶으려 했다. 이 숫자가 코로나 돌발변수 탓에 5%포인트가량 높아지게 생겼다. 올해 성장률이 잘해야 제로 수준에 머물 것이란 점은 또 다른 변수다. 만약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굴러떨어지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다락같이 뛸 수 있다.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더 찍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십중팔구 국채 발행을 선호한다. 조세저항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적자국채 발행은 짐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짓이다. 남미의 여러 나라 사례에서 보듯 빚을 내 흥청망청 쓰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문 대통령은 "3차 추경을 해도 110%에 달하는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 유로존 국가들과 단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현 복지 수준을 그대로 둬도 저출산·고령화 탓에 수치는 쑥 올라가게 돼 있다.
나라 곳간을 꼭꼭 걸어잠그자는 게 아니다. 다만 쓸 때 쓰더라도 절도 있게 써야 한다. 나아가 정직한 정부라면 증세 필요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