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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김유찬의 증세 고언, 전문가 의견 경청하길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코로나 방역처럼 선제대응을

증세 제안이 또 나왔다. 이번엔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 김유찬 원장(63)이 직접 나섰다. 대학교수(홍익대) 출신인 김 원장은 26일 월간 '재정포럼' 5월호에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재정건전성 리스크'란 제목의 특별기고를 실었다. 짧은 칼럼이 아니라 22쪽짜리 논문이다. 김 원장은 "현재와 같은 재난의 시기에는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하에 필요한 증세를 뒤로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세 제안은 지난주에도 있었다.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은 20일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두 국책 연구기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증세를 제안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재부는 나라 곳간을 책임진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에 대해 또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25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 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 입을 통해 "증세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는 언급이 나왔다. 증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부정적인 시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증세 없이 코로나 경제위기를 뛰어넘고, 나아가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까. 비현실적인 소망이다. 정치권은 이미 30조~40조원 규모의 3차 추경을 사실상 확정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 2차 재난지원금, 심지어 기본소득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나같이 수십조,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대형 복지 프로젝트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아무리 좋아도 단 한 푼 증세 없이 천문학적인 돈을 조달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당부한다. 빚(국채)으로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잇따라 나오는 전문가 조언을 귀담아듣기 바란다. 정치적 여건은 괜찮은 편이다. 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국회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의석을 얻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어느 전임자보다 높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힘을 모으면 충분히 야당과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은 방역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선제대응 전략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나라 재정도 다를 바 없다. 발빠른 대응과 전문가 존중이 국가재정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 증세 타이밍을 놓친 뒤 땅을 치며 후회해봐야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