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애플에 자진시정 기회 준 공정위, 면죄부 아니길

[파이낸셜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8일 국내 이동통신사에 대한 갑질논란을 빚은 애플에 대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동의의결제는 피해를 준 사업자가 자진 시정안을 내면 공정위가 판단해 조사를 중단하는 제도다. 다만 상대기업의 피해를 충분히 보전하지 못하면 과징금이나 검찰고발 등 법적 제재절차를 밟게 된다. 물론 공정위가 개선안을 수용하면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된다.

공정위는 2016년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애플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국내 이통사들에게 단말기 광고비용과 무상수리 서비스 비용을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애플은 공정위가 조사를 압박해오자 지난해 스스로 자진시정하겠다며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이를 공정위가 이번에 수용한 것이다. 마치 가해 용의자가 경찰의 법적 처벌 전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는 격이다. 체벌 전 먼저 본인이 반성하고 스스로 잘못을 고치겠다는 데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동의의결제 도입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2007년 한미 FTA 체결 협상 당시 미국이 한국내 자국기업의 권익 보호를 위해 동의명령제 도입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지금은 동의의결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의의결제는 독일·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될 만큼 보편적이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중요한 건 신속한 피해 구제다. 동의의결과정 없이 곧바로 과징금 부과나 검찰고발이 이뤄지면 해당기업이 불복 소송으로 맞설 수 있다. 자연히 법적 다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피해 구제는 더디게 된다. 동의의결제는 법적 소송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아껴 신속한 손해배상·건전한 시장질서 확립을 도와줄 수 있다. 위법 혐의가 있더라도 자진시정 노력에 진정성이 있다면 한 번 기회를 주는 게 맞다.

공정위는 2013년 동의의결제를 첫 적용한 사례가 있다. 당시 공정위는 국내 1·2위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다음의 불공정행위 혐의를 잡고 조사에 착수했다. 업계에선 천문학적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압박감을 느낀 네이버와 다음은 자진시정하겠다며 동의의결절차를 신청했고 공정위는 이를 수용했다.


다만 동의의결제가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작정하고 실컷 시장을 교란시켜 놓고 막상 걸리니 동의의결 신청으로 시간벌기를 할 수도 있다. 동의의결제가 불공정거래 행위의 방패막이가 되지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