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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민연금 2054년 고갈, 개혁은 나몰라라

예정처 재원 합의 촉구
정부·여당이 총대 메야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3년 더 당겨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9일 발표한 '사회보장정책 분석' 보고서에서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2054년으로 예상했다. 이는 정부 전망(2057년)보다 3년 빠른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사회보장 지출이 정부 총지출을 웃돈다며 "재원 마련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산정책처는 국회의장 산하 기구로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으로 전문적인 연구·분석을 수행'한다. 국회예산정책법은 "예산정책처의 직무는 독립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2조②항). 예정처는 종종 행정부가 아프게 느낄 정책 제안을 내놓는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 정책 전반을 다룬 이번 보고서도 같은 범주 안에 있다.

국민연금을 다루는 문재인정부의 태도는 안이하다 못해 무책임하다. 2018년 논란 끝에 정부 개편안을 국회에 냈지만 손도 못 댄 채 어영부영 20대 국회가 끝났다. 정부안 자체가 엉성하다. 4대 방안 중 1안은 현행유지안이다. 이걸 개혁안에 포함시켰다. 헛웃음이 나올 판이다. 정부 태도가 이러니 어떤 정당이 앞장서서 개혁의 총대를 메겠는가. 21대 국회 들어서도 정부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롭게 나올 안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는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고용안전망을 더 촘촘히 짜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실업자 구제도 중요하지만 국민연금을 통한 전국민 노후보장은 더 중요하다.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9~2023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하는 삶의 만족도지수 순위를 2017년 28위에서 2023년 20위, 2040년 10위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가만히 있어선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 북유럽 선진국 같은 복지를 누리려면 국민부담률(세금+사회보험료)을 높여야 한다. 결국 정부와 집권당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

사실 예정처가 추정한 국민연금 고갈 연도(2054년)도 느슨한 느낌이 든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전 세계 꼴찌다.
올해는 연간 인구가 처음으로 자연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국민연금 개혁은 이미 늦었다. 예정처 보고서가 개혁에 시동을 거는 방아쇠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