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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제로배달에 거는 기대

[여의도에서] 제로배달에 거는 기대
얼마 전 점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약속 자리에 나온 사람이 잠깐만 시간을 달라며 양해를 구하더니 스마트폰 화면을 연신 두들겨댔다. 무얼 하냐고 묻자 오늘은 등교수업이 없는 날이라 집에 있는 아이에게 점심을 배달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몇 번만 두드리면 김밥부터 삼겹살 구이까지 배달되는 세상이니, 바깥에서 집에 있는 아이의 점심 정도 챙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얼마 전에 이 배달앱의 수수료 문제가 도마에 오른 이후, 지자체들이 앞다퉈 직접 배달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뛰어들고 있는데, 이 중 서울시와 경기도가 은연중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 배달앱이 특별히 다를 게 있나 싶었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또 그렇지도 않다. 둘 다 낮은 수수료로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목적만 같을 뿐,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딴판이다.

서울시의 '제로배달유니온'은 다른 지방으로 확장할 수 있고, 관리는 민간에서 하며, 무엇보다 제로페이 시스템과 연계하기 때문에 구축하는 데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또 서울시가 내세운 수수료만 지키면 민간사업자 누구나 참여 가능한 모델이다. 반면 경기도의 '공공배달앱'은 전형적인 지자체 발주 프로젝트다. 업체를 선정해 서비스를 몽땅 맡기고 지자체 자금을 투입해 개발·구축·운영하는 방식이다.

시장에서는 벌써 이 두 가지 앱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를 놓고 설전이 오가는 분위기다. 아직 서비스가 정식으로 공개된 것은 아니니 지금 단계에서부터 무엇이 우수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현재까지 나와 있는 수수료 체계를 비교해보면 어쨌든 서울시의 제로배달유니온은 최저 2%로 경기도의 공공배달앱보다 싸다. 수수료를 낮추겠다는 본래의 취지만 놓고 보면 제로배달유니온이 1점 앞서가고 있는 셈.

항상 그렇듯 경쟁은 시장을 풍요롭게 만들고 소비자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건 돌려쓰고 베껴도 쓰고, 경쟁도 붙어야 시민들에 이롭다.

지자체들이 배달앱을 만드는 취지는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배달앱 시장이 어쨌든 민간의 영역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자체의 배달앱이 이 시장을 차지하고 앉아 다른 민간사들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면, 이는 또 다른 독과점일 수 있다. 거대한 공권력을 등에 업은 공공배달앱이 민간업체들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공공의 역할은 시장의 질서가 뒤틀렸을 때 이를 바로잡는 기준을 제시해주고, 민간과 협력해 지속성을 이어가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서울시의 제로배달유니온이 수수료 조건만 지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개방성을 앞세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어차피 배달앱을 경찰이나 소방처럼 완전한 공공재로 만들 수는 없다. 태생적으로 시장재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배달앱이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공이 모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보다, 간접적인 시장 구조개선 정책으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좋은 정책은 빈틈없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속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힘도 빼고 복잡한 것은 덜어내고 수고로움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걸 지자체들이 알아야 할 때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