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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창'도 못하는 '언택트 콘서트', 경주 없는 '나홀로 마라톤' 초대박 왜?

'떼창'도 못하는 '언택트 콘서트', 경주 없는 '나홀로 마라톤' 초대박 왜?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떼창'도 못하는 '언택트 콘서트', 경주 없는 '나홀로 마라톤' 초대박 왜?
온라인 K컬쳐 페스티벌 '케이콘택트 2020 서머'(KCON:TACT 2020 SUMME)(왼쪽),'롱기스트런 언택트 레이스 패키지'(CJ ENM·위메프 제공) (CJ ENM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지난 3월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하자 국내 문화체육계에서는 신음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곧 끝날 것이라고 믿었던 '혹한기'는 기약 없는 '빙하기'로 돌변했다. 올해 상반기 행사 일정이 줄줄이 취소됐다.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업계 전체를 짓눌렀다.

탈출구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 '언택트 콘서트'에 역대 최다 관람객이 몰렸다. '언택트 마라톤' 참가표는 하루 만에 매진됐다. '무대와 언택트는 상극'이라는 공식이 보기좋게 깨졌다. 오히려 '초대박'으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문화예술은 상거래와 다르다. 상품은 비대면으로도 효용을 얻을 수 있지만, 콘서트나 스포츠는 '오감'(五感)을 통해 욕구를 충족한다. 사람들은 왜 '비합리적 소비'처럼 보이는 '언택트 무대'에 기꺼이 지갑을 연 것일까.

◇"설마설마했는데"…언택트 콘서트·마라톤 '역대 최대 매출'

5일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 K컬쳐 페스티벌 '케이콘택트 2020 서머'(KCON:TACT 2020 SUMME)를 개최해 총 405만명의 유·무료 관객을 끌어모았다. 지난 8년간의 '케이콘' 누적 관객 수(110만명)보다 무려 3.7배 많은 관객을 '언택트'로 동원한 셈이다.

CJ ENM은 지난 2012년부터 24회에 걸쳐 미국·중남미·유럽·중동·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국을 돌며 케이콘을 개최했다. 올해는 전세계 150개국에서 동시 방영했다. 유튜브, 티빙, 쇼피, 에이아이에스(AIS) 등 온라인 플랫폼이 총동원됐다. 신(新)한류의 글로벌 확산이라는 케이콘의 취지가 '언택트'를 통해 달성됐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지난달 14일 '방방콘 The Live'(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열어 75만6600여명의 최대 동시 접속자를 기록했다. 역대 유료 온라인 콘서트로는 최고 실적이다.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등 107개국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덤)가 앞다퉈 몰리면서 오프라인 스타디움 공연 15회치 매출이 단숨에 일어났다. 급기야 '안방 1열'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특이점'은 보통의 스포츠 행사에도 나타났다.

현대자동차가 주관하는 '롱기스트런' 유료 참가권도 지난달 16일 위메프에서 단독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티켓 3000장 모두 '완판'됐다.

'롱기스트런'은 코로나 19 사태로 취소될 뻔한 마라톤 행사를 '언택트' 행사로 전환한 이색 행사다. 당초 판매 기한을 2주로 넉넉하게 준비했지만 장당 1만원의 참가권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수익금 전액은 현대차가 추진하는 서울 공공기관 내 어린이 러닝 트랙 조성 사업에 기부될 예정이다.

롱기스트런은 이달 3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참가자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은 뒤 '나 홀로 마라톤'을 뛰면 된다. 언택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소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해 10km를 완주하는 방식이다.

티켓 판매처인 위메프 관계자는 "언택트 마라톤이라는 신선함과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는 취지에 많은 소비자들이 호응했다"며 "최근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현대자동차가 진행하는 뜻깊은 행사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언택트'에 열광했나…학계 "새 지평 열렸다"

사람들은 왜 '언택트'에 열광했을까. 여기에는 업계 경험칙이나 고전적 경제학으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소비의 심리학'이 숨어 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소비가 확산했지만 어디까지나 '재화 소비'에 한정된다. 소비자는 물건을 구매할 때 상품 그 자체에서 '효용'(Utility)를 얻는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구매 경로는 중요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수요가 곧바로 온라인으로 쏠린 이유다.

하지만 콘서트나 스포츠는 얘기가 다르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무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목소리를 듣는 '교감'을 원한다. 수천 수만명이 부대끼며 '떼창'을 하는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다. 마라톤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는 번호표를 달고 한날한시에 남들과 경주하는 '쾌감'을 만끽하는 데 돈을 쓴다. 혼자 뛰는 마라톤에 값을 지불하는 행위는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학계는 사람들의 '비합리적 소비'를 행동경제학으로 풀어낸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을 '온전히 합리적인 존재'로 보는 주류경제학의 대원칙을 부정한다. 주류경제학에서 소비자는 이익과 손실을 정확히 분석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경제주체들이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며, 때론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은 가격 외에도 다양한 외생변수가 존재한다"며 "언택트 콘서트, 언택트 마라톤이 주는 '진귀함'과 '신선함'이 소비자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오감'을 충족할 수 없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누리는 것에서 감정적인 만족감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가 기성 사회심리학에 큰 화두를 던졌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황상민 전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장(심리학과 교수)은 "언택트 문화체육 활동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학계가 사람의 심리를 얼마나 단순하고 상투적으로 해석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경우 '현장감' 때문에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거나 스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현장감 외에도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는 요인이 매우 많다"며 "실제로 게임을 하려는 사람보다 TV중계로 남이 하는 게임을 관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큰 시련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통찰의 기회를 준 점도 있다"며 "인간의 행동을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