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윤중로] 코로나 묵시록

[윤중로] 코로나 묵시록
때는 203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을씨년스러운 학교 풍경은 그대로다. 예전 같으면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캠퍼스는 적막감만 감돈다. 대학교는 취업학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그 많던 학생들은 어느새 훌쩍 줄어들었고, 철밥통을 자랑하던 교수집단도 대량실업 위기에 처해 하나둘 학교를 떠났다. 시간강사들도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몇 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로 학교 안팎은 철저하게 온라인을 위주로 한 수업과 시험으로 고착화됐다. 간헐적으로 등교수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대학만 변한 건 아니다. 모든 직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속출했다. 수출이 안돼 일감이 끊긴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했다. 전반적 경제침체로 소비는 물론 내수마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면서 사상 최대 대량실업 사태를 맞았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났고, 파산하거나 문닫은 상점들로 거리는 침울했다. 다행히 코로나로 자연의 질서가 회복되면서 날씨는 미세먼지 없이 청정했고, 계절의 윤곽도 뚜렷했다.

자연 농사는 어느 때보다 잘됐고, 농촌으로 귀향하는 인력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농촌 노동력 부족 사태는 여전했다. 설상가상 이런 틈을 비집고 인종주의와 과거 옛 독재시설을 그리워하는 우익세력의 준동으로 정치지형도 크게 요동쳤다. 파시즘이 대중의 동의를 바탕으로 성장했듯 힘든 삶에 지친 도시민들은 이들의 선동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녔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휩쓴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재난의 불평등을 체감했다.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는 계급과 계층에 따라 불공평하게 분배됐고,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됐다. 이들은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며 바이러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재난은 질병의 은유를 통해 각종 사회적 차별과 양극화를 양산하는 기폭제로 작동한다. 수전손택은 "질병이 병리학의 대상이 되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도덕주의적 징벌성이 부여된다"고 강조했다. 질병은 타락, 퇴폐, 무질서, 나약함과 동일시되며 일상에 침투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 전 국민 재난소득 지급과 발빠른 재정 확대정책으로 비교적 잘 버티던 한국은 코로나 지속과 기본소득·고용보험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면서 적기를 놓쳤다. 민주공화국에서 기본소득은 국가가 국민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그런데 각자 다른 정치적 명분에만 집착했을 뿐 보편적 증세 없는 재원조달 방안을 만지작거리며 세월을 허비했다. 무엇이 두려워서 그랬을까. 기본소득이 마치 재정을 좀먹는 원흉으로 둔갑하면서 재정건전성 타령만 울려퍼졌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상상력 부족과 관행, 상투성은 이처럼 동일성의 반복, 과거 회귀로 귀착된다.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세력들이 점차 지지세를 넓히면서 한국은 다시 예전의 구질서로 퇴행했다. 국민의 삶이야 어찌 되든 재정건전성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전도된 사고를 가진 세력들이 권력을 움켜잡았다.
정치는 테크노크라트에 또다시 좌우되는 사무정치로 변질됐다. 정치를 규격화, 기능화, 프레임장치 쯤으로 생각하는 얼빠진 전문가들의 득세는 국가의 비전을 그들의 욕구로 대체한다. 선택지가 별로 없는데 그 뻔한 퇴행적 지식이 바이러스와 동맹을 맺은 것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