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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투기 인식부터 잘못… 넘치는 돈 3천兆 투자 길 터줘야" [부동산시장 전문가 대담]

라임사태 등으로 금융상품 불신
넘치는 유동성, 부동산 쏠림 심화
정책 실패 인정하고 공급 안정화
인테리어 등 관련산업에도 관심을
펀드 투자 등에 세제 혜택 줘야

"부동산=투기 인식부터 잘못… 넘치는 돈 3천兆 투자 길 터줘야" [부동산시장 전문가 대담]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정부가 뭘 한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다. 지금까지 실패한 부분을 인정하고 적절한 곳에 자금이 몰리도록 투자처를 제공해줘야 한다." 시중 유동성 3000조원 시대다. 양도 많아졌지만 가파른 증가속도가 더 눈에 띈다. 4월 한 달 동안 유동성은 34조원(1.1%) 늘었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시중 유동성은 정부 추가경정예산이나 한국은행을 통해 기업 자금 등 꼬리표를 달고 나오지만 결국 이름은 없어지고 시장에서 만난다. 최근 돈의 쏠림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부동산이다.

돈이 모인다는 것은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한다는 뜻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부동산 측면에서는 재개발 규제 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 공급수단 확보, 상업용 부동산의 주택용 부동산으로의 용도변경 등 과감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투자자가 안심할 만한 투자환경과 상품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부동산=투기' 인식한 정부 잘못


6일 파이낸셜뉴스가 진행한 '긴급 유동성 대담'에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융투자상품이나 증권상품, 집 이외의 부동산 파생상품들의 '사행성 개념'을 부추긴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봤다. 합리적인 대체 투자처도 '못 믿게' 만들어 갈 곳 잃은 돈들이 결국은 주택으로 쏠리게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연구위원은 "유동성이 증권 시장으로 흐르자 거래세를 부과하려고 하고, 부동산에서는 법인을 투기의 원흉으로 몰고 있다"며 "법인은 법인세수 확보, 투명성 제고, 임대물량 확보 등 선순환도 많은데 모든 걸 투기로 보는 정부의 인식 탓에 모든 돈이 주택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대중부유층의 자산 포트폴리오와 자산관리 니즈'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투자성향을 저위험이라고 답한 비율이 45.5%로 절반에 육박했다. 원금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는 상품에만 투자하겠다는 초저위험의 비율도 14.4%였다.

이 때문에 부동산투자회사(리츠) 등 대체 투자에도 자금이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직접투자의 한계로 나온 간접상품인 리츠가 각종 규제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상장 절차를 줄여주는 등 제도 개선을 해줘야 한다"고 봤다. 그는 또 주택법을 주택산업법으로 바꿔 기존 분양 중심의 주택 시장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 전문가들도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을 해소하고 금융자산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안심할 만한 투자환경과 상품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금융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내외 우수한 투자처를 찾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김영길 부행장은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초저금리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부동산과 같이 특정자산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지역과 자산으로의 분산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신명혁 자산관리그룹장은 "우선적으로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세부담을 강화한다거나, 경제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켜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부동산 자금의 금융 및 실물 분야로 유입 유도를 위해 장기투자, 펀드투자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해 가계의 금융자산 형성 및 기업의 원활한 투자자금 조달에 기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나은행 심기천 IPS본부장은 "주택가격이 경제 펀더멘털에서 벗어난 정도가 커질수록 훗날 큰 폭의 조정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경제 충격이 올가능성이 큰 만큼 금리·조세·주택공급·거시건전성정책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복합처방이 필요하다"면서 "자산 버블을 최대한 제어하면서 기술혁신 및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적극 나선다면 버블이 아닌 건전한 자산 가격 상승을 유발해 건전한 투자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기대된다"고 밝혔다.

주택산업 기반 만들어야


특히 최근 금융권은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운용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의 대규모 손실 사태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진 상황인 만큼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잇따른 대규모 금융투자 손실 사태로 인해 투자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 역시 부동산 쏠림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저금리 시대에 보다 수익성 높고 안정적인 장기투자를 희망하는 니즈를 반영한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면서 "안전자산을 선호하지만 기대수익률은 예적금보다 높아 예적금보다는 대체투자, 외화자산 등 새로운 금융상품에도 관심이 있는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익·리스크 스펙트럼의 상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 정부의 과감한 대책 전환을 주문했다. 두 연구위원은 "경제위기 당시 투기성 자금까지 용인했던 것처럼 통큰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며 "투자하기 편하고 수월하고 수익률 높고 상당한 안전성을 가진 상품이 나올 환경을 만들어주면 유동성은 자동으로 분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덕례 실장은 "국토부가 최근 처음으로 도시재생펀드를 만들었다. 기금 형식이 아닌 투자자를 모집하는 대체 수단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부동산=투기 산업'이라는 정부 자체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주택 시장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실장은 "아파트는 물론 상가나 리츠 등 부동산 관련 상품이 거의 도박처럼 취급받고 있어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택산업에도 스타트업, 유니콘이 나오기 위해서는 모험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털(VC)들도 이 분야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실장은 "주택이나 부동산 쪽도 집꾸미기, 인테리어, 리모델링 등 새로운 기술과 접목하거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공실률이 높아지는 상업용 부동산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등 시대를 반영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