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사유재산권 깔아뭉갠 부동산 정치

노영민 졸지에 무주택자
헌법조항 제멋대로 무시 

부동산 정책이 혼돈 그 자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63)은 8일 페이스북에 "가족의 거주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이달(7월) 내에 서울 소재 아파트도 처분키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아파트는 반포에 있다. 앞서 그는 충북 청주에 있는 아파트를 팔았다. 이로써 노 실장은 다주택자에서 졸지에 무주택자가 될 판이다. 재산권은 헌법(23조)이 보장하는 권리다. 하지만 노 실장은 여론에 밀려 재산권을 포기했다. 사유재산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마저 뒤뚱거린다.

재산권은 집값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다. 판사 출신인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7일 "강제로 팔라는 것은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정·청 어디에도 이 같은 반헌법적 발상에 제동을 거는 이가 없다. 사실 노영민 실장은 제 발등을 찍었다. 다주택 청와대 간부들에게 집을 팔라고 권한 장본인이 바로 노 실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들을 상대로 주택보유 전수조사를 실시 중이다. 정세균 총리는 8일 "각 부처는 고위공직자 주택보유 실태를 조속히 파악하고, 다주택자는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본 난을 통해 부동산 정치를 지속적으로 경계했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은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21차례 대책을 줄줄이 내놓는 동안 줄곧 부동산을 정치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이 그은 울타리 안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근래 빚어지는 온갖 소동의 원인은 바로 부동산의 정치화에 있다.

노영민 사건은 부동산 정치의 진수다. 이런 식으로 다주택 고위공직자 수십명, 많아야 수백명이 집을 팔면 과연 집값이 잡힐까. 어림없는 일이다. 그저 여론 무마용으로 부동산 정치쇼를 펼치고 있을 뿐이다. 그 뒤엔 초강력 22번째 부동산 대책이 대기 중이다. 이미 정치권에선 보유세·거래세를 징벌적 수준으로 높이고, 등록임대주택 정책을 뒤엎고, 임대차 3법을 강행하자는 논의가 오간다. 하나같이 전례 없는 부작용을 낳을 게 뻔한 대책들이다.


집을 죄악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한 정부가 22번째 대책을 내놓는 순간 곧바로 23번째 대책을 짜야 할 것이라고 감히 예측한다. 22번째 대책 발표를 서둘지 마라. 그 대신 당·정·청이 냉각기를 갖고 정책을 원점부터 훑어보길 바란다. 사람을 바꿔야 한다면 그 또한 주저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