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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규제혁신 빠진 한국판 뉴딜, 맹탕 아니길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구호보다 규제 풀어야

한국판 뉴딜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국민보고대회에서 "한국판 뉴딜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은 단단한 사회안전망을 토대로 디지털·그린 뉴딜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현 정권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68조원(누적)을 투자해 일자리 89만개, 후임 정부 3년차인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은 칭찬할 만하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코로나19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환자수도 미국·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급증세다. 이런 판국에 한국은 K방역을 발판으로 벌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 만한 행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추격형에서 선도형 경제로 거듭나려는 정부의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뉴딜(New Deal)이라면서 알맹이가 없다. 눈에 확 띄는 규제혁신이 빠졌다. 그저 현 정부가 강조해온 혁신적 포용성장을 새롭게 포장한 느낌이다. 원격의료를 보자. 스마트 의료 인프라는 10대 과제 중 하나로 꼽혔다. 그만큼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환자 안전, 의료사고 책임, 상급병원 쏠림 등 의료계 우려에 대한 보완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원격의료는 케케묵은 과제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의료계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뉴딜을 한다면서 보완장치부터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원격의료 시늉만 내겠다는 뜻이다.

혁신은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이 우리 경제 체질을 바꿀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다 장밋빛 청사진에 그쳤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경제 성장률은 꾸준히 떨어졌다.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대에서 2%대로 낮아졌다. 정치적 구호가 요란할수록 경제는 뒷걸음질친다.

누가 뭐래도 경제를 살리는 건 기업이고 시장이다. 정부 재정은 마중물로 족하다. 대신 정부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민간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를 꾸미는 일이다. 거기서 투자가 나오고 소득이 나오고 일자리가 나온다. 반세기 전 대기업 창업주 시대에나 통하던 반재벌·문어발 규제를 고집하면서 뉴딜을 말하는 건 모순이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 강자가 금융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시대에 금산분리를 고수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제일 먼저 규제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일단 막고 보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를 일단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는 게 첫 걸음이다. 녹색성장도 창조경제도 한국판 뉴딜도 규제완화 없이는 다 맹탕이다. 화려한 구호보다 한 건이라도 확실한 규제완화가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