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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또 부자증세 카드, 세제는 갈수록 누더기

소득세 최고세율 45%로
고통분담 보편 증세 외면

정부가 부자증세 카드를 꺼냈다. 22일 발표한 새해 세법개정안을 통해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행 42%에서 45%로 높아진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도 껑충 뛴다. 개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투자소득세도 신설된다. 문재인정부는 복지에 돈을 펑펑 썼다. 앞으로 쓸 곳도 수두룩하다.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증세는 불가피한 조치다. 하지만 특정계층을 겨냥한 부자증세로 숭숭 뚫린 재정 구멍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전형적인 부자증세다. 정부는 3년 전에도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올렸다. 이번엔 과세표준 10억원 초과구간을 신설해 45% 세율을 매기기로 했다. 대상은 고소득자 1만6000명, 세수 효과는 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종부세 중과에 대해서도 줄곧 극소수층에만 해당하는 세금이라는 주장을 폈다. 또한 새로 만드는 금융투자소득세는 슈퍼개미 15만명, 전체 투자자의 2.5%에만 해당하는 세금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재인정부는 해마다 추가경정예산을 짜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진 올해는 이례적으로 3차에 걸쳐 총 60조원 가까운 예산이 추가됐다. 이 바람에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예상된다. 국채를 마구 찍는 바람에 마지노선 40%를 단숨에 넘어섰다. 국채를 통한 재원 조달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증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김유찬 원장은 "현재와 같은 재난의 시기에는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하에 필요한 증세를 뒤로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정규철 경제전망실장도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말한 증세와 부자증세는 사뭇 다르다. 지속가능한 복지체계 구축을 위해선 납세자 모두가 제 몫을 하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반면 부자증세는 땜질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어떤 정부도 대대적인 조세개혁에 손을 대지 못했다. 직전 박근혜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신화에 빠져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다. 꼼수 증세가 낳은 비극이다. 정통 조세개혁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문 정부는 박근혜정부와 다르지 않다.

저부담·저복지를 중부담·중복지로 바꾸려면 돈이 든다. 그 돈은 수혜자가 내는 게 맞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스웨덴 복지는 모든 이가 세금을 내고 모든 이가 혜택을 받는 구조다. 우리도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면 모든 이가 소득세·부가가치세(소비세)를 더 내야 한다. 그래야 복지 수혜자도 당당하다. 하지만 정부는 선거 때 표가 무서워 감히 보편적 증세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다. 지난 1977년 박정희정부가 도입한 부가세는 올해로 43년째다.
그동안 10% 세율이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이처럼 큰 줄기는 놔두고 잔가지만 건드리다 보니 세제는 누더기가 됐다. 문재인정부는 그 위에 덧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