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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숨 돌린 월성 원전, 이젠 고준위 방폐장 건립에 힘써야

[파이낸셜뉴스] 경북 경주의 월성 원전 2~4호기가 한숨을 돌렸다. 24일 주민들이 원전 안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를 추가로 지어도 좋다고 동의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위원장 김소영·카이스트 교수)는 시민참여단 145명을 상대로 세번에 걸쳐 설문조사를 했다. 마지막 3차 조사 결과를 보면 맥스터 증설 찬성이 81.4%로 반대 11%를 압도했다.

주민들의 합리적인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 월성 원전 맥스터는 2022년 3월이면 꽉 찬다. 서둘러 더 짓지 못하면 사용후 핵연료를 쌓아둘 곳이 없어 원전을 세울 수밖에 없다. 2~4호기는 대구·경북 전력의 22%를 공급한다. 주민들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대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찬성율이 조사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는 점이다. 1차 조사(6·27)에선 찬성이 58.6%였다. 이것이 2차(7·18) 때 80%로 높아졌고, 마지막 3차(7·19) 때 81.4%로 조금 더 올랐다. 3주에 걸친 숙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전과 맥스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공사 재개 찬성률이 1차 36.6%에서 최종조사 59.5%로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숙의 과정에서 원전 이해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원전 정책을 펼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일단 한숨은 놓았지만 그렇다고 근본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맥스터는 사용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임시로 쌓아두는 곳이다. 따라서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진짜 큰 숙제는 영구처분시설을 짓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이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그래서 2013년부터 20개월 동안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두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 결과물이 2016년 5월에 나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다. 이어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법안을 국회에 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 프로젝트는 거기서 멈췄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기본계획'에 국민적 합의가 빠졌다며 2019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재검토 대상은 기본계획이다.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은 재검토위가 거둔 성과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아직 발도 못 뗐다.

문재인정부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신중함이 지나쳐 자칫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당장 영구정지된 고리 원전 1호기를 해체할 때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을 어떻게 처리할 텐가. 쓰레기장이 없으면 원전 해체 산업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원전 찬성·반대와 무관한 국가의 책무다. 재검토위원회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