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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고집불통 부동산 정책, 백약이 무효

추가 공급대책 내놔봤자
시장 신뢰 못얻으면 헛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이르면 4일 주택 공급대책을 내놓는다. 집 10만호가량을 수도권에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 태릉골프장을 주택 부지로 활용하고,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용적률을 높이고, 3기 신도시 용적률도 높이는 안 등이 거론된다. 공급량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시장은 살얼음판이다. 민주당이 지난주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인 후폭풍이다. 이 마당에 민주당은 4일 종합부동산세법·소득세법 등 세제 개편안도 강행할 참이다. 이런 상황에서 10만호를 새로 내놓는다고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민주당은 부동산에 정치색을 입히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3일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부동산의 정치화다. 열린민주당 주진형 최고위원은 이 같은 남 탓 주장에 대해 "불만을 엉뚱한 데로 희생양을 삼아서 돌리려는 것 아닌가"고 되물었다. 주 최고위원은 증권사 사장을 지낸 경제인 출신이다. 정략에 찌든 여느 정치인과는 세상을 보는 결이 다르다.

민주당에 겸손의 미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본회의 5분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제학자 출신인 윤 의원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따위의 이념적인 단어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임대차 시장이 굴러가는 원리를 그저 상식선에서 말했을 뿐이다. "임대시장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하는 시장"이라거나 "임대인의 부담을 늘리면 결국 임차인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난해한 경제이론이 아니라 상식이다.

시장은 집권당이 상식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벌써 시장에선 전세대란 조짐이 보인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으르렁거릴 판이다. 오죽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3일 "(당정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제도 오해에 의한 갈등이 예상되니 신속하게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을까.

정치는 사회 갈등을 조율하는 통로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조율은커녕 되레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섰다. 전월세 3법과 징벌적 세금 탓에 전세든 매매든 물량이 잠기면 공급대책 아무리 내놔봐야 헛수고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정치인이 늘 되새겨야 할 금언이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지금 공급대책보다 백배는 더 급한 게 정책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인적 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