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은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 세종대왕 말씀이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문재인정부를 꼬집으면서 이를 소개했다. 하지만 세종의 겸손한 태도는 예외적이다.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은 대개 쓴소리를 부담스러워했다.
우리 역사에서 목숨 걸고 직언한 충신은 적잖다. 신라 최치원과 그의 증손 고려 최승로가 대표적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벼슬할 때 '토황소격문'을 지은 대문장가였다. 모반을 주도한 황소가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는 고사가 말하듯…. 다만 그가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 10조'는 유실됐다. 반면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 중 22조가 남아 있다. 유교에 입각한 중앙집권 확립을 지향한 한계는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큰 행사(연등회, 팔관회)는 백성의 부담이 크므로 삼간다." "왕은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한다"는 대목은 '돌직구 상소문'으로 손색이 없다.
옛 상소문 형식을 빌린 '시무 7조'라는 국민 청원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진인(塵人) 조은산'이라는 이 청원인은 현 국정의 난맥상을 신랄히 풍자했다. 예컨대 "집값이 11억이 오른 곳도 허다하거늘, 어느 대신은 '현' 시세 11%가 올랐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직격했다. "수도 한양이 천박하니 세종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해'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라고 이해찬 전 여당 대표를 겨냥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청원은 동의자 수가 부쩍 늘었다. 비공개 처리로 논란을 빚다 공개 전환 하루 만에 청와대의 답변요건을 채웠다. 설령 이 30대 후반 평범한 직장인의 지적이 다 맞진 않더라도 충언역이(忠言逆耳·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라는 사자성어는 되새겼으면 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