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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외부지원 거부한 김정은의 노림수

金 러닝셔츠 입고 수해 현장
南과 소소한 경협 연연 않고
美와 핵으로 빅딜 미망 여전

[구본영 칼럼] 외부지원 거부한 김정은의 노림수
북한 정권의 자폐증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북핵 제재가 장기화하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최근 큰 수해까지 입었다. 이런 삼중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며칠 전 "어떤 외부지원도 받지 말라"고 했다.

대남 '거리두기'도 계속할 낌새다.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접촉 자체를 기피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방역협력을 제안한 지 오래지만, 북측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국내 한 민간단체가 보낸 코로나 진단키트까지 반송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통일부가 "반송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했지만….

작금의 북한 처지가 배짱을 튕길 계제는 분명 아니다.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지난 8일 "많은 북한 주민이 이상기후로 굶주림을 겪을 위험이 커졌다"고 했다. 이후 황해도 수해지역에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은 러닝셔츠 바람이었다. 식량가격 폭등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려는 연출이었을 법하다.

얼마 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측에 물물교환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남한의 설탕, 쌀과 북한의 술, 생수를 바꾸자고 했다. 하지만 불발됐다. 개성인삼주가 유엔의 북핵 제재 위반품목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북한 정권의 반응이 냉랭했다. 이 장관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고 남북관계에 접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백일몽을 꾼 꼴이었다. 국제정치와 북한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다.

북한이 왜 이렇게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청개구리 행태'를 보일까. 김일성대에서 수학한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교수가 언젠가 했던 진단이 정곡을 찌른다. 즉 "북한 주민이 잘사는 쌍둥이인 남한의 진면목을 알면 북 체제가 무능한 증거로 인식할 것"이라는 지적이 그렇다. 실패했지만 보유한 핵의 일부와 제재 전면해제를 바꾸려고 미국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던 김정은이었다. 북이 푼돈이 아쉬워 남북 물물교환에 나설 개연성은 애초 희박했던 셈이다.

물론 '폐쇄 회로'에 갇힌 듯한 북한 정권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캐나다와 싱가포르 등에 본부를 둔 인터넷 데이터 분석기관들이 낸 '디지털 2020 국제 현황' 보고서를 보라. 북한을 세계 230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주민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이는 경제를 살리려면 대외개방을 해야 하지만, 그러면 세습독재 체제가 흔들리게 되는 딜레마를 반영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0.4%였다. 올해는 -8.5%로 곤두박질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도 북한이 '소소한' 남북경협에 소극적이라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에서 그 단서가 포착된다. 이 책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군은 우리(북한) 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니 말이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 랜드연구소 브루스 베넷 연구원의 분석이 그럴싸하다. 북한이 비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체제보장과 함께 대규모 경제지원까지 받았던 파키스탄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요지였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북 비핵화를 둘러싼 한·미 동맹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주민을 쫄쫄 굶기면서 핵 강국이 되려는 북의 미망보다 더 걱정스러운 현상일 듯싶다.

kby777@fnnesw.com 구본영 논설위원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