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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일상속 마스크와 히잡 문화

[fn논단] 일상속 마스크와 히잡 문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외출 시 스마트폰을 두고 오는 것보다 마스크를 두고 나오면 더 당황하게 되는 경험을 한번씩은 해보았으리라.

지난달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확산하고 있는 프랑스의 연극배우들이 마스크를 끼고 공연한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고대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가 등장하는 장 라신의 희곡 '브리타니쿠스'의 연출가는 당시 전염병이 창궐해서 모두 마스크를 쓴다는 새로운 설정을 추가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그러한 연출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관객들이 마스크로 인한 현실적 불편함을 굳이 공연에서까지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리라. 향후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전염병 시대의 대표 아이콘이 되어버린 마스크로 인해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귀찮고 답답하고 불행한 일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외출 시 히잡을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이란 여성들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 모든 무슬림·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이 히잡을 필수적으로 착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란과 사우디 여성들이 그 운명에 처한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인터넷에서 1970년대 이란 여성의 사진을 검색해보면 당시 자유분방한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개성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란 여성뿐 아니라 이란을 방문하는 외국 여성들과 해외를 방문하는 이란 국적 여성들까지도 히잡 착용이 의무화된다.

그동안 이란 여성들 사이에는 히잡을 거부하는 운동이 지속돼 왔다. 국제사회에서도 히잡이 여성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돼왔다. 히잡은 이제 단순히 의상이 아니라 자유와 개성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반면 마스크는 보건에 관한 문제다.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은 비슷하더라도 마스크에 문화상대주의, 종교의 자유, 성평등 같은 이슈가 들어설 수는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동양에서는 예방의 목적으로 착용하던 마스크를 서양에서는 환자가 착용한다는 인식으로 배척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국경을 초월해 계속 확산하면서 그러한 문화적 차이와 인종차별의 이슈가 맞물리던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 서양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이라는 항변도 있었다. 다중이용시설의 폐쇄로 인해 그 업종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한 절차였음을 알게 된다. 모두가 불편하지만 마스크는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2020년을 배경으로 하는 미래의 문화콘텐츠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브리타니쿠스'와는 달리 관객들이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 마스크 너머로도 자기만의 방식의 소통을 멈추고 있지 않다. 그런 '현재'의 경험들이 '미래'에 이르러서는 '과거'를 추억하는 리얼리티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약력
△연세대 전기공학과 △뉴욕시립대학교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학사 △설앤컴퍼니 제작감독 △CJ문화재단 대학로아지트 예술감독

조용신 연극 뮤지컬 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