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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칼럼] 공수처가 뭐길래

정치 경제 사회 담당
20년 장기집권구도 집착
검찰 대체 권력기관 역할
이낙연의 정치력 시험대

[노주석 칼럼] 공수처가 뭐길래
"석달 열흘을 기다렸으니 더 기다리지 않게 해달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지연 관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발언이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오는 26일까지 국민의힘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지명하지 않으면, 야당의 거부권을 아예 삭제하는 내용의 법 개정에 착수하겠다는 최후통첩이다.

검찰개혁의 완결판이라고 자처하는 공수처를 거대 여당의 힘으로 단독 출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평소 현자(賢者) 이미지를 보여주던 이 대표가 드디어 '분파적' 정치지도자로의 변신을 작심한 듯하다. 조국과 추미애 전·현직 법무장관이 휘두르던 '조자룡 헌칼'을 이어받을 모양이다.

대선후보로 낙점을 받으려면 공수처 총대를 메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일단 효과는 "글쎄올시다"이다. 이후 진행된 차기 대선주자 선호조사에서 지지도가 전달보다 4%포인트나 빠진 17%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20%에 못 미쳤다.

국민 열명 중 네명이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위급상황이다. '제2의 나훈아쇼' 같은 위안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할망정 파멸적 정쟁거리의 등장이다. 이도저도 권력쟁취용 패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이 와중에 추미애 법무장관이 세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 윤석열 검찰총장을 급박했다. 22일 대검 국감장에서 터질 윤 총장의 '말 폭탄'에 이목이 쏠린다. 일견 '정의의 사도'를 자임하는 장관과 야당의 성원에 힘입어 '절름발이 검찰'을 지키려는 검찰총장의 진검승부로 읽히지만 내막은 단순치 않다. 공수처 출범 전 최후의 정지작업이다.

바야흐로 공수처의 시간이다. 공수처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 블루스'를 출까. 수사지휘권 폐지와 솎아내기 인사, 장관 지휘권 발동을 통해 검찰은 사실상 무장해제됐다. 사법부와 검찰·경찰을 손아귀에 쥔 집권세력이 공수처까지 꿰차려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답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지난달 22일 이해찬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돌출된 "가자! 20년!" 건배사에 그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여권 핵심부는 "가자!"라는 선창에 "20년!"이라는 떼창으로 화답했다. 앞으로 20년을 더 집권하자는 결기 어린 다짐이다.

공수처에 왜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만하다. 공수처를 향후 20년 장기집권 시나리오의 문을 여는 열쇠로 여긴 것이다. '공수처장 1명만 잘 뽑으면' 상대방 표적수사, 우리편 지키기 편파 기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수사권과 기소권 양날을 장착한 공수처 통제를 통해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계산이다.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이낙연 대표가 조급증을 내는 느낌이다. 진흙탕 정치판에서 이 대표의 현자 이미지는 소중한 자산이다. 야당에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주고, 공수처를 받는 빅딜도 방법이다. 아니면 공수처법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포용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공수처=장기집권' 구도의 불식이 우선이다.

이대로 가면 공수처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업적으로 남기보다 검찰권력을 대신하는 또 다른 권력기관의 탄생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공수처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사냥개'가 아니라, 아무나 무는 '미친개'로 표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디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joo@fnnews.com 노주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