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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이후 '상속세' 논란 지속..."기업 영속성 해쳐" vs "부의 세습 안돼"

"OECD 상속세 최고세율 수준...외국 투기자본 위협" 상속세 인하 목소리 불거져 "각종 공제에 상속세 실효세율 낮아...내는 사람 1년 1만명도 안돼" 반대도 많아 재계에선 "부의 대물림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봐야" 한목소리 쓰리쎄븐·유니더스·농우바이오·락앤락 등 상속세 우려 속에 경영권 넘어가기도

이건희 별세 이후 '상속세' 논란 지속..."기업 영속성 해쳐" vs "부의 세습 안돼"
[서울=뉴시스] 지난 2012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 이재용 사장이 식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뉴시스DB. 2012.11.30
[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1. "우리나라를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끌고 도와주신 이건희 회장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셨던분입니다 존경받아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재산18조 중에 10조를 상속세로 가져가려합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삼성이라는 기업 무너지면 저희나라 엄청 큰 타격이 올겁니다. 그리고 그 18조라는 돈 세금 다 내가면서 번 돈입니다. 어떤 나라가 세금을 두번씩이나 때어갑니까. 제발 삼성도 생각해주십시요. 삼성은 우리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우리나라는 삼성을 위해 이런것도 못해줍니까"- 청와대 국민청원(2만7000여명 동의)

#2. "일고의 가치도 없다. 1년에 30여만 명이 사망하는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1원이라도 내는 사람은 1년에 1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30억 이하의 자산을 물려받는 경우 여러가지 공제등으로 인해 실제 납부하는 실효 상속세율은 12%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30억을 물려받는데 3억6000정도 세금이 많은 건가? (중략) 물론 수백억, 수천억 자산을 물려주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더 높은 요율의 세금을 내지만, 그렇게 많은 자산을 형성한 것이 자신만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로소득인 상속재산에 대해서 근로소득만큼의 세금을 물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 이재웅 전 쏘카 대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상속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낼 상속세 규모가 지난 4월 통과된 1차 추경 예산안(11조7000억원)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을 보면 일본과 대한민국만 50% 이상인데다, 생산적인 가업승계와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국내기업 보호에 있어 올바른 수준인지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명목상속세율이 높다. 증여액이 30억 원 이상이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여기에 주식회사의 최대주주 혹은 특수관계인이면 평가액에 20%를 할증하기 때문에 재벌 상속인들은 주식 평가액의 60%를 증여·상속세로 내야 한다.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각종 공제로 인해 상속세 실효세율이 낮고, 내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상속세 실효세율은 27.9%다. OECD 국가 평균 상속세 26%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고, 특히 상속 재산 상위 10%의 실효세율은 16%대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2018년 기준 상속세가 부과된 인원은 8002명뿐이다. 1만명도 채 되지 않았다. 기초공제, 인적공제, 일괄공제, 배우자 공제 등 감면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총 피상속인 35만6109명 중 2.25%만 상속세를 낸 셈이다.

재계에선 이 같은 통계에 '개인'과 '기업'을 분리해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오류라고 지적했다. 상속세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재계에선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상속세 부담은 '기업하고자 하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경영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 제약 요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건희 별세 이후 '상속세' 논란 지속..."기업 영속성 해쳐" vs "부의 세습 안돼"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삼성전자가 29일 3·4분기 매출 66.96조원, 영업이익 12.35조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2020.10.29. chocrystal@newsis.com
실제로 창업주나 총수의 갑작스런 유고에 따른 세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던 기업들도 상당수다.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777)'은 지난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들은 약 150억원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는 지난 2015년 말 창업주 김덕성 회장 별세로 아들 김성훈 대표가 최대주주가 됐다. 그는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약 50억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어려워 결국 2017년 11월 사모펀드에 경영권 매각했다.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했던 농우바이오 역시 창업주 고희선 회장이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나면서 유족들은 1200억원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지분을 매각하면서 경영권이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중견건설회사 요진건설산업은 지난 2014년 정지국 회장이 별세한 후 총 900억원 상속세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정 회장일가는 2015년 6월 사모펀드에 경영권 매각(총 지분의 45%)했다. 이후 정 회장과 공동 창업자였던 최준명 회장이 2017년말 지분을 재매입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에게 2배 이상 차익이 발생했다.

밀폐용기 국내 1위 업체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은 생전에 상속세 부담 등을 고려해 2017년 말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에 지분 매각했다. 이밖에 광통신 소자제조 업체 우리로광통신, 온라인 화장품 판매사 에이블씨앤씨, 가구업체 까사미아, 신발갑피 원단 제조업체 유영산업 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매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들이 비정상적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란 국민정서가 작용한 결과로 상속·증여세율(50%)은 OECD국가 평균(26%)의 2배에 달한다"면서 "최대주주 할증 세율 65%를 감안하면 일본의 55%보다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네덜란드, 중국 등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징벌적 과세' 차원의 과도한 상속세로 대주주의 지분 감소에 따른 경영권 우려 등 경영 장애요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3대쯤 내려가면 땀흘려 일으킨 기업을 국가에 헌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세계적인 상속세 축소 움직임에 맞지 않을뿐더러 기업가 정신 고취, 기업의 존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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