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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중기 주52시간제는 아직 무리다

코로나 불황 속 시기상조
탄력근로제 등 보완 먼저

[fn사설] 중기 주52시간제는 아직 무리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주 52시간제를 적용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주52시간 근무제 확대 실시 시한이 코앞에 닥쳤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된 이 제도 유예기간이 올 연말로 끝나면서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 실시를 앞두고 상당수 중소기업은 속이 타들어 가는 분위기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2시간 초과 근무업체 218곳 중 83.9%가 준비가 덜 됐다고 응답했다. 코로나발 불황 속에 이 제도가 중대한 진퇴의 기로에 선 인상이다.

이런 분위기는 11월 30일 주무부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그는 '50~299인 기업 주52시간제 현장안착 관련 브리핑'에서 중소기업의 애로를 타개할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강조했다. 즉 "탄력근로제 법안을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면서다. 이는 내년 초 주52시간 확대와 중소기업이 당면한 현실 사이에서 정부의 딜레마를 반영한다.

이 정책을 시행하려는 정부의 입장도 일면 이해된다.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한 건 대기업 종사자나 중소기업 근로자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중기에 이미 2년6개월여 준비기간을 준 것도 사실이다. 고용노동부가 "9월 전수조사에서 80% 이상 기업이 주52시간제를 준수 중이라고 답했다"고 밝힌 배경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이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9월엔 상반기 코로나 직격탄으로 일감 자체가 없어져 주52시간제를 적용하고도 남는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그래서 최근 수주가 조금씩 늘어나는 기업의 속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들이 신청한 외국인 근로자 중 실제 입국자는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형편에 주52시간제를 밀어붙이면 중소기업은 일감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큰 폭으로 제조업 종사자가 줄어든 고용노동부의 10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라. 국내 근로자들도 근로시간보다 일자리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기업에 비해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사지로 몰지 않으려면 다양한 유연근로제 도입을 선행하는 게 맞다.
이 장관이 호소한 탄력근로제 말고도 독일의 '근로시간 계좌제' 등도 검토할 만한 대안이다. 중소기업이 꼭 필요한 시기에 적립한 초과노동을 근로자들이 나중에 돈 대신 휴식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정부도 국회도 주52시간제를 일률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중소기업들에 탈출구부터 열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