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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美 의회 난장판, 통합 실패한 최강국의 민낯

"바나나공화국 전락" 한탄
진영논리 판치면 이런 꼴

[fn사설] 美 의회 난장판, 통합 실패한 최강국의 민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뒤엎을 것을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워싱턴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 최강 미국의 민주주의가 4시간 동안 멈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다. 이 바람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확정짓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가 일시 중단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의원들은 서둘러 몸을 피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미국은 졸지에 세계의 리더에서 '바나나 공화국'으로 추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그는 양원 합동회의가 열리기 전 백악관 앞 집회에 참석, "펜스 부통령이 선거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한다. 그러나 펜스는 이를 거부하는 성명을 내고 회의를 주재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을 꺾었다. 사실 예년이라면 양원 합동회의는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선거인단이 작년 12월 14일에 행사한 투표를 개봉하는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어 신임 대통령이 오는 20일 취임하는 게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이다.

나라 안팎에선 즉각 비판과 개탄이 동시에 쏟아졌다. 어떻게 세계 최강국, 그것도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꼽히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거다. 바이든 당선인은 "의사당 난입은 시위가 아닌 반란"이라고 규탄했다.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쟁이 민주공화국이 아닌 바나나공화국 수준"이라고 한탄했다. 바나나공화국은 바나나 수출로 먹고사는 부패한 후진국을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역사는 오늘 현직 대통령이 선동해 의사당에서 벌어진 폭력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조차 "수치스러운 장면"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비교해도 미국의 의사당 난입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도 종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담장을 허물고 본청 진입을 시도한 적이 몇 차례 있다. 그렇지만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상원 본회의장을 점거하는가 하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로 치면 박병석 국회의장 사무실이 침범당한 꼴이다.

트럼프 임기 4년 내내 미국은 분열의 길을 걸었다. 공화·민주 양당으로 갈린 정파적 대립이 극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하원의장은 감정 섞인 언사를 숨기지 않았다. 서로 다투다가도 위기 앞에서 힘을 모으던 전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렁텅이에 빠진 코로나19 사태를 놓고 미국은 두 진영이 으르렁대기만 했다.

남 얘기가 아니다. 미 의사당 난입사태는 우리가 새겨야 할 반면교사다. 한국 정치도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란에서 보듯 진영 논리가 판을 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인사회에서 "새해는 통합의 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미국 사태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