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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첫 위안부 배상 판결, 후속 외교적 해법 절실

[fn사설] 첫 위안부 배상 판결, 후속 외교적 해법 절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한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눈사람이 놓여져 있다. / 뉴시스
새해 초부터 한·일 관계가 격랑을 맞았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리자 일본 측의 반발이 이어지면서다.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가해자인 일본의 이런 무책임한 자세로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까 걱정스럽다.

서울중앙지법은 반인도적 범죄는 '주권면제'의 예외라고 판시했다. 즉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대해 복종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 주장을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그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아사히신문의 10일자 보도를 보라. 우리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거나, 항소도 제기하지 않고 국제법으로 맞서겠다는 태도다.

일본이 이제라도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에 전향적으로 나서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개연성이 희박하다면 창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죄 수준이 미흡하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파기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그사이 일본 정부의 돈이 들어간 화해치유재단의 돈을 받지 않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속속 유명을 달리해 현재 생존자는 16명뿐이다. 이들에 대한 '희망고문'만 계속하는 건 국가의 도리가 아니다. 실질적 배상도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게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무작정 손 놓고 있어서도 곤란하다.
만일 법원이 배상금 확보 수단으로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 압류·매각을 추진할 경우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게 뻔하다. 이 경우 양측이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경제·안보 협력을 놓치게 된다. 양국 정부는 그 이전에 할머니들에게 실효적 도움을 줄 정치·외교적 해법을 찾는 게 선택 가능한 차선책일 수도 있음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