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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파에 냉골방에서 '덜덜'…쪽방촌의 겨울나기

서울시내 쪽방 거주자 약 3천명…65세 이상 35%
온수·난방되지 않는 쪽방에서 주운 패딩 입고 버텨
주춤해진 한파에 밖으로…"집이 더 추워"

[현장] 한파에 냉골방에서 '덜덜'…쪽방촌의 겨울나기
21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이모씨(90)는 쪽방촌에서만 30여 년을 거주했다. 이씨 방에 있는 매트릭스는 고시원을 운영하는 건물주가 줬다고 한다. /사진=윤홍집 기자

"이리와서 한번 앉아봐요. 냉장고가 따로 없다니까."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모 할아버지(90)가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2평(6.6㎡) 남짓 크기인 지하 쪽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흡사 냉장고 같았다. 이씨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 박스를 깔았다. 창문이 없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이씨의 방은 바깥보다 차가웠다.


[현장] 한파에 냉골방에서 '덜덜'…쪽방촌의 겨울나기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위치한 한 건물 복도. 페인트가 벗겨진 방문 앞에는 '요보호대상자'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이 많았다. /사진=윤홍집 기자

■누울 자리도 빠듯한 쪽방…"밖이 더 따뜻해"

21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는 겹겹이 옷을 껴입고 맨바닥에 앉아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연일 기승을 부리던 한파가 주춤하자 햇볕을 쬐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햇빛을 쬐던 한 남성은 "집보다 밖이 따뜻해서 낮에는 나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쪽방 거주자는 약 3000명이다. 65세 이상 독거노인이 35%를 차지하고, 10명 중 6명은 기초생활수급자다. 이들 중 대부분은 6.6㎡ 이내의 좁은 공간에서 월 20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생활한다. 보일러는커녕 연탄조차 때지 못해 난방없이 겨울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열악한 상황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 앞에는 '요보호대상자. 긴급상황 발생 시 119에 신고하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이 많았다. 노크를 하고 만난 거주자들은 방 안에서도 패딩점퍼를 입고 이불로 몸을 감쌌다. 방은 길에서 주운 겨울옷과 고물상에서 산 가전기기로 가득 차 누울 공간도 빠듯해 보였다.

쪽방촌에서 22년째 살고 있다는 최모씨(62)는 "오전 6시와 오후 6시에 딱 30분만 뜨거운 물이 나와서 그때가 아니면 세수도 못 한다"라며 "건물주가 석유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두 번만 틀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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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 쪽방촌 인근에는 일주일에 3차례 이동식 목욕차가 온다. 오후 12시30붙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3시간 밖에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는 없다. /사진=윤홍집 기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쪽방촌에서 온수가 나오는 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 거주자들은 인근 봉사활동센터에 있는 공용 목욕탕을 이용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최근 이마저도 중단됐다. 대신 쪽방촌에는 일주일에 3차례, 하루 3시간씩 이동식 목욕차가 와서 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목욕차 관계자는 "한 사람당 평균 20~30분씩 씻기 때문에 하루에 10명도 이용하지 못한다"라며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몇주씩 씻지 못하다가 목욕차가 오면 겨우 씻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끼니를 거르는 쪽방촌 거주자는 부지기수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문 닫은 무료급식소가 많아지면서 도시락 하나도 금덩이처럼 귀해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무료급식소에서 줄을 서다가 도시락이 모두 소진되면 그날은 배를 곯아야 한다.

이날 정오 서울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에는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해 순식간에 100여명 몰려들었다. 근처에서 기다리던 주민들은 도시락 상자가 도착하자 분주하게 줄을 섰다. 도시락 120개는 5분 만에 동났다. 도시락을 받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십수명이었다.

쪽방촌 거주자들은 한 끼 식사가 더욱 어려워졌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쪽방촌 거주자 김모씨(66)는 "도시락을 받으려면 한참 전부터 와서 기다려야 한다"며 "내 앞에서 끊기면 그날은 굶는 것. 하루에 하나만 주니까 저녁에도 먹으려면 점심때 절반만 먹고 남겨둬야 한다"고 고개를 떨궜다.

[현장] 한파에 냉골방에서 '덜덜'…쪽방촌의 겨울나기
21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에서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날 마련된 도시락 120개는 5분만에 동났다. /사진=김태일 인턴기자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 김태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