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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뉴욕으로 간 쿠팡, 차등의결권이 갈랐다

창업주에 29배 의결권 허용
정부·민주당은 립 서비스만

[fn사설] 뉴욕으로 간 쿠팡, 차등의결권이 갈랐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왼쪽)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쿠팡의 최대주주다. 지난주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진=뉴스1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뉴욕 증시로 간다. 쿠팡은 1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벤처 위주의 나스닥이 아니라 곧바로 대형주 위주의 뉴욕증권거래소(NYSE)로 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쿠팡의 기업공개(IPO) 규모가 중국의 알리바바 이후 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널지는 쿠팡의 가치를 500억달러(약 55조3500억원)로 평가했다.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반가운 것은 우리 스타트업이 뉴욕 증시 상장에 도전할 만큼 국제적인 역량을 갖췄다는 점이다. 쿠팡은 지난 2010년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창업했다. 이후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아 쑥쑥 커가는 중이다. 아직 적자를 면하지 못했지만 성장세는 놀랍다. 미국 증시엔 이른바 테슬라 요건이 있다. 적자기업이라도 성장성이 뛰어나면 상장을 허용한다.

아쉬운 것은 쿠팡이 멀리 태평양 건너 뉴욕 증시를 택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2011년 출범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초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뒀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국내 상장을 권유했고,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이 유치 경쟁을 벌인 끝에 2016년 코스피에 상장했다. 하지만 곧바로 삼바는 분식회계 논란에 휘말려 여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삼바 사례는 아직 적자 상태인 쿠팡에도 교훈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차등의결권(Dual Class Voting Rights)이다. 상장 신청서에 따르면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소유한 지분에 무려 29배 의결권을 주기로 했다. 상장 뒤 쿠팡 주식은 클래스 A, B 두 종류로 나뉜다. A주는 1주 1의결권, B주는 1주 29의결권이다. 명백한 특혜다. 하지만 뉴욕 증시는 창업주가 이런 특혜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 경영권이 튼튼해야 혁신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이 차등의결권을 통해 창업자의 경영권을 뒷받침한다.

국내에서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지난 2018년 가을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창업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유니콘 기업 집중육성을 위해 창업주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정부도 2019년 9월 홍남기 부총리가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 빈말이 됐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려면 상법(369조)을 바꿔야 한다.
정부와 민주당은 기업을 옥죄는 상법 개정안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통과시켰다. 반면 기업이 원하는 차등의결권은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그새 쿠팡은 뉴욕행을 결정했다.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