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여기 아니면 갈 곳 없는데…" 동대문 상인 '재배치' 갈등

동대문종합시장, '4층 재배치' 계획 착수
권리 없는 '전대차' 상인들 빈손으로 나가야
시장 상인 "나갈 때 나가더라도 시간은 줘야…"

"여기 아니면 갈 곳 없는데…" 동대문 상인 '재배치' 갈등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4층 A동 모습. 이 시장 4층 A동과 C동은 모 의류기업이 입점해 상인들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 /사진=윤홍집 기자

"한마디 통보 없이 10여 년간 일한 곳에서 쫓겨나면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하나요?"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4층에서 원단 판매업을 하는 고모씨(48)가 이같이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동대문종합시장의 소유주가 한 의류기업과 계약을 맺고 4층의 절반 이상을 비우기로 하면서 상인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동대문종합시장 측은 임대인에게 '자리 재배치'를 해주겠다고 밝혔으나, 대다수의 상인들은 '전대차 계약자'이기 때문에 빈손으로 나가야 할 처지다. 전대차란 임차인이 임차물을 다시 제3자(전차인)에게 임대하는 계약을 말한다.

■ 동대문종합시장, 의류기업 입점…상인들 '방 빼야'

2일 동대문종합시장과 상인들에 따르면 해당 상가 4층 A·C동에는 ㄱ의류기업이 입점할 예정이다. 종합시장이 최근 ㄱ의류기업과 계약에 성공하면서다. 동대문종합시장은 4층 A동과 C동을 각각 9월 말과 6월 말까지 비울 계획이다.

갑작스러운 계약 소식에 해당 지역 상인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수십 년간 생계를 걸어온 장사터를 잃을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적자가 누적된 이들은 상가를 나갈 여유가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종합시장 측은 상인들에게 '자리 재배치'를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4층 A·C동은 공실이 많고 쇠락했기 때문에 상가 내 다른 자리로 옮겨도 상인들에게 손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종합시장과 직접 임대차 계약을 한 상인만 해당된다. 4층 A·C동 상인 대다수는 임차인과 월세 계약을 맺은 '전대차 계약자'이므로, 아무런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동대문종합시장에는 관행적으로 전대차 계약을 맺고 장사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전차인은 임대 계약자에게 월세를 내고, 또 임대 계약자를 대신해 종합시장 측에게 관리비를 지불해야 한다. 한 두평 남짓 공간에 월세와 관리비는 각각 100만원, 5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종합시장 측은 전차인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동대문종합시장의 소유주인 주식회사 동승 측 관계자는 "최근 계약을 마쳐 아직 임차인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단계"라며 "다만 임대차계약서에 전대차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전차인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여기 아니면 갈 곳 없는데…" 동대문 상인 '재배치' 갈등
동대문종합 시장에서 원단판매업을 하고 있는 임모씨(52)는 장사터를 잃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진=윤홍집 기자

■ "수십년간 일해도 투명인간?…이전 통보는 해줬어야"

마찰은 이 부분에서 빚어진다. 상인들은 길게는 수십년간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해왔고 임·관리비까지 냈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대문시장으로부터는 퇴거와 관련해 아무런 공지를 받지 못했고, 임차인과 공인중개소 관계자에게만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약 30년간 원단을 팔아온 김모씨(58)는 종합시장 측으로부터 받은 '관리비 미납' 문자를 내밀며 "관리비를 안 냈다고 임차인이 아닌 전차인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놓고 전차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이제 와서 전차인의 존재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동대문시장 측은 관리비 납부에 대해 "점포 영업자에게 가상계좌로 받고 있을 뿐, 전대차 계약 여부는 알지 못한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김씨는 "수십 년간 해온 장사를 두 달 안에 접게 생겼는데 시장 측에선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라며 "나갈 때 나가더라도 시간을 주고, 절차에 대해 설명해줬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 아니면 갈 곳 없는데…" 동대문 상인 '재배치' 갈등
동대문종합시장의 상인 김모씨(58)는 시장 측으로부터 받은 관리비 미납 문자를 보이며 "문자까지 직접 보내놓고 전차인의 존재를 모른 척하는 것은 갑질"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씨 제공

결국 일부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운 '전대차 계약'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고 한다. 100여명의 상인들이 다른 층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상권에서는 없었던 권리금이 생기고 임대료까지 올랐다. 이전에 따른 상가 수요가 증가했으나 자리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인중개수수료와 이사 비용 등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종합시장 4층 A동에서 20여 년간 영업해온 임모씨(52)는 "몇몇 임대 계약자들이 수천만원대 권리금을 만들고 월세를 높였다"라며 "빚을 내서 무리하게 이전한다 해도 코로나19 여파로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장사를 접자니 밥줄이 끊기고, 이전하자니 돈이 없어서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호소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