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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임대차3법 도그마가 불러온 재앙

[강남시선] 임대차3법 도그마가 불러온 재앙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형태다. 기원은 1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전세는 이 땅에 뿌리 내렸다.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한 부산, 인천, 원산 지역에 일본인 거주지가 조성된 게 단초였다. 농촌 인구까지 도시로 급격히 유입된 것도 한몫했다. 도시 인구의 팽창화로 당시 개항 도시의 집값은 치솟았다. 지금 같은 금융제도가 없던 때라 집값을 마련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궁리끝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대신 집을 일정기간 내줘야 했다. 이게 전세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사금융이자 갭투자였던 것이다.

조선 말이나 지금이나 내집마련의 수단은 비슷했으니 전세는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주거의 역사다. 중구난방이던 전세제도는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등장하면서 1년 임대제가 확립됐다. 이후 1989년 임대 2년으로 연장됐다. 당시 전세 임대기간이 늘자 전셋값은 폭등했다. 급등한 전셋값을 감당 못한 서민들이 생을 끊는 일이 속출했다. 1990년에만 20명 가까운 세입자가 자살을 택했다.

30년 흐른 지난해 문재인정부는 전세기간을 '2+2년'으로 확대했다. 작년 7월 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것. 사실상 전세를 4년으로 늘리는 가공할 규제였다. 거기에 연장 시 임대보증금을 5% 이하로 묶는 전월세상한제까지 더했다. 집값 과열기에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전세 안정을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발상은 순진했다. 이후 부동산시장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70%의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 덕분에 둥지내몰림을 겨우 면했다. 반면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30%의 서민들은 2년 전보다 최소 50% 이상 오른 전세폭탄에 희생되고 있다. 5억원짜리 전세가 7억~8억원이 되니 대출을 받아도 한계다. 결국 감당 못하는 강남 세입자는 강북으로, 강북 세입자는 수도권으로 밀려나고 있다. 임대차 2법 시행 9개월이 지났지만 전국 전세가는 질주 중이다.

역대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 전 장관은 작년 11월 국회에서 "내년 봄 즈음엔 전세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허언이다. 현 정부가 벤치마킹 삼았던 독일 베를린시의 월세상한제도 무력화됐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월세상한제를 '지방정부의 월권'으로 규정해 무효화했다. 베를린시는 5년간 월세를 동결하는 조치를 시도했지만 '월세 공급축소'로 귀결됐다. 비싼 베를린 월세를 피해 세입자가 몰린 인근 지역도 월세 품귀에 가격만 급등했다. 이 마당에 임대차 3법의 마지막 퍼즐인 전월세신고제가 6월 시행된다. 전월세신고제가 도입되면 전세시장의 공급은 더 쪼그라들 것이라는 게 대세적 전망이다.

정부는 여전히 임대차 3법의 반성은 없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노형욱 국토부 장관 내정자는 제도 도입 이후 계약갱신율이 높아졌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이쯤이면 현 정부의 임대차3법에 대한 믿음은 도그마다.
계약갱신으로 발등의 불을 끈 70%의 세입자들도 시한부 인생이다. 2년 뒤 이들은 수억원씩 오른 전셋값에 전세유랑을 떠날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2년 뒤 닥칠 전세재앙을 어찌 감당할까 싶다. 정책자들이여, 바쁘더라도 부동산카페에 한번 들어가서 민심을 확인해 보시라. cgapc@fnnews.com 최갑천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