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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기각·기각… 성범죄 3만건 넘는데 구속수사는 5% 불과

성범죄 느는데 구속수사는 줄어
"증거인멸 우려 커 구속수사 필요"
"피의자 방어권 위해 불구속 확대"
일선 수사관 사이에서도 엇갈려

기각·기각·기각… 성범죄 3만건 넘는데 구속수사는 5% 불과
성범죄 사건이 매년 늘어나는 반면, 구속수사 비율은 도리어 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선 수사관 사이에선 성범죄 특성상 증거인멸 우려가 커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지만, 현실에선 피의자 방어권 확보를 위해 불구속 수사 원칙이 확대 적용되는 모양새다.

■발생·검거↑ 구속↓··· 이유는?

2일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성폭력범죄 사건에서 구속수사가 꾸준히 줄고 있다.

성폭력범죄는 통계가 작성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연 2만건 내외에서 3만건 초반까지 늘었다. 2015년 처음 3만건을 넘긴 뒤로는 매년 3만건 내외로 발생했다.

반면 구속사례는 꾸준히 줄고 있다. 2012년 성폭력범죄 구속수사 비율은 10.8%인데 이후론 한 해도 10%를 넘기지 못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3년부터 9.2%, 7.8%, 7.0%, 6.6%, 5.7%, 5.2%, 5.3%로 감소경향이 뚜렷하다.

현장에선 엇갈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구속수사를 강조하는 측에선 성범죄 특수성을 이야기한다. 피의자를 구속해 수사할 경우 피해자와 피의자가 자연히 격리될뿐더러, 범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라는 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증거가 분명하게 남는 게 아니다보니 몇 명이 입을 맞추고 증거를 감춰버리면 입증하기 어렵다"며 "구속수사를 해야 하는 사건도 점점 더 영장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대표적인 게 지난달 12일 극단적 선택을 한 충북 청주 동급생 동반 사망사건이다. 중학생 A양은 친구 B양의 계부인 C씨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으나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월 A양의 부모는 해당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청주 청원경찰서에 냈다. 경찰은 3월 검찰에 C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경찰은 여중생들이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달 11일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하려 했으나 검찰은 다시금 이를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성범죄 신고 뒤 무려 3개월 동안이나 피의자인 계부가 구속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이 사망한 지난달 말에야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C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A양과 B양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경찰의 초동 수사와 검찰의 반려결정에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섣부른 구속 자제해야" 불구속 확대

섣부른 구속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만큼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고, 여기에 피의자 인신까지 구속할 경우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8년 광주 한 번화가에서 애인을 폭행하고 차 안에서 성폭행까지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D씨 사건은 섣부른 구속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D씨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경찰은 D씨를 구속상태에서 수사했다. D씨의 어머니가 겨우 확보한 CC(폐쇄회로)TV 영상엔 고소인 진술과 달리 D씨가 도리어 애인에게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D씨는 8개월에 걸친 구치소 생활 끝에 출소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의 불구속 수사 기류 역시 성범죄 불구속 수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최근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 대해서 법원이 강조하는 분위기고, 불구속 재판과 수사가 원칙이라는 점이 강조됐기 때문에 실무진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작년엔 코로나19 영향으로 긴급한 것 외에는 구속하지 말라는 기류까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