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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내 악보 인터넷에 넘쳐나… 창작자 피해방지 시급" [유명무실 저작권]

<5·끝> 무단편곡 법적대응 나선
피아니스트 이루마
원곡 훼손한 편곡 심각
엉터리 악보 사고 원곡자에 항의
저작권자에도 수익은 안돌아가
악보시장 바로잡는 계기
음원시장은 불법공유 딛고 성숙
소송 당장은 불편해도 필요한 일

"나도 모르는 내 악보 인터넷에 넘쳐나… 창작자 피해방지 시급" [유명무실 저작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이루마씨가 악보저작권을 침해하는 출판사 등을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섰다. 음악계에선 이씨의 소송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루마 제공

원작자 동의 없이 곡을 편곡해 악보로 유통한다면 불법일까. 그간 방치돼 왔던 무단편곡에 유명 음악가가 제동을 걸었다. 피아노 학원과 서점, 온라인 등으로 무단편곡된 악보집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상황을 보다 못해서다. 주인공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이루마씨다. 한국에서 처음 본격 제기된 악보저작권 무단편곡 소송전 가운데 이씨의 입장을 들어봤다.

■"곡 훼손해 영리추구 행위" 비판

이씨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악보가 무분별하게 편곡돼 유통되는 상황이 저작권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제가 모르는 엄청난 양의 악보들이 뜨더라"라며 "모르는 편곡자가 사보(악보를 원 악보에서 새로 옮긴 것)한 악보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었고, 이 악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유통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곡이 바뀐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일부는 원작자로서 참기 어려운 훼손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악보로 영리를 취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씨가 침해상황을 사전에 알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느꼈다. 이씨는 "(확인한 악보가) 대부분 마음대로 편곡이 돼 원곡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며 "어떤 분들은 그렇게 구매한 악보들이 원곡과 너무 다르고 악보 자체도 이상하다며 회사로 항의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일부에선 악보 편곡은 자유가 아니냐고 말한다. 소비자가 악보를 편곡해 공유하는 과정에서 원곡이 더 널리 알려지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이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씨는 "무단악보들을 통해 저작물이 더 많이 알려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저작물이 왜곡된다거나 잘못 편곡이 되어 알려지는 경우를 수차례 경험했다"며 "확장성이 조금 떨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저작자의 고유 창작물이 왜곡되거나 피해를 입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장은 불편해도 인식 변화 계기로"

무단편곡의 경우 이용이 늘어도 원곡자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씨는 "광범위한 인터넷 플랫폼과 유통경로를 통해 음악가들이 자기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저작물의 권리가 누군가에 의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자칫 저작권자의 생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편곡으로 원곡자도 이득이란 시각은) 창작자의 노력과 그에 대한 성과를 너무나 쉽게 판단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음악계에선 과거 소리바다 등 P2P 플랫폼을 통해 음원(mp3파일 등)이 불법 공유되던 관행을 바로잡은 상태다. 여전히 정당한 수익분배와 관련한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음원이 정식 경로로 공유된다는 점은 생태계 전반을 건강하게 했다.

이씨는 "P2P같은 음원공유업체들을 통해 음악산업이 위기를 맞았었지만 대중들이 유료 다운로드 또는 스트리밍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음악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면서 오랜 침해가 이어져온 악보부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리란 기대를 전했다.


공론화를 염두에 둔 이씨의 이같은 법적대응은 대중은 물론 음악계 내부에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씨는 "저작권자조차도 저작권의 개념과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고, 현재 악보시장은 음원시장보다도 그 인식이 뒤떨어져 있다"면서 "제도적인 개선과 보호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저작권자와 소비자들에게 저작권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음원시장이 그랬듯 악보시장 또한 긴 시간의 진통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지금 법적대응에 나선 게 불편하고 고된 일일 수는 있겠지만 창작자들에겐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 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