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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기 기술분쟁엔 '국민참여제' 도입을" [fn이사람]

피해입은 中企에 무료 법률지원
공익법인 '경청' 박희경 변호사

"대-중기 기술분쟁엔 '국민참여제' 도입을" [fn이사람]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침해 소송에서 국민참여재판이 필요하다. 소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개선할 방안이기 때문이다."

박희경 변호사(사진)를 지난 7일 서울 마곡동 중소기업법률지원재단 경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청은 아이디어, 저작권, 기술 분야 등에서 권리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에 무료법률대리·자문 등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 공익법인이다. 박 변호사는 경청이 설립된 2019년 10월부터 경청 소속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중소기업에 기술침해 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침해를 당해도 소송에서 침해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서다. 판사가 기술침해 관련 민사소송 과정에서 전문적인 기술내용을 전부 알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판사가 전문가에게 특정 분쟁상황을 분석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판단하는 민사소송법상 감정 또는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있지만 한계가 있다. 실제 재판에서는 전문가 1명의 의견에 따라 판결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1인 전문가에게만 의존하는 사실관계 분석은 자의적 판단의 오류 가능성을 항시 내포한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분쟁이 발생할 때 중소기업은 입증과 증거자료 수집 어려움 등 실질적 불평등이 존재한다. 기업 규모, 자본력, 정보력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판사가 중립적 마인드로 판단할 수 있는 소송환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침해 관련 분쟁에서 국민참여재판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일반인이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해당 배심원단의 논의를 거쳐 판단과 손해배상액에 대한 권고의견을 내리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방안이다. 국내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2008년부터 형사사건에 관해서만 시행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기술침해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해 소를 제기하는 중소기업(원고)이 입증책임이 있다. 원고가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재판부는 원고에게 소송상의 불이익을 준다. 이 때문에 피고(대기업)는 증거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침해 소송의 경우 단순한 사법 관계의 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재판의 공정성 확보 측면에서 국민참여재판 도입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도 국민참여재판을 기술침해 소송과 같은 민사재판 절차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8년 9월 발의된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을 시도한 바 있다.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에서는 2018년부터 중소기업 기술침해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소송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시작해온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중소기업에 기술침해 소송은 기업의 존폐가 달린 마지막 수단인 만큼 국민참여재판 논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기술분쟁 시초부터 막대한 자본과 비용을 들여 대형로펌을 선임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 단절을 우려해 소송 제기를 고심하고 변호인 선임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다"며 "중소기업에 있어 핵심기술은 회사의 필수자산이다. 국회 및 정부기관 등 입법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