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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랑도 무한히 무거울 수 있음을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41] <안녕, 헤이즐>

[파이낸셜뉴스] 시한부 암환자들의 사랑이야기. 더없이 건조한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이 영화는, 그러나 흔치않게 풍성하고 매혹적이며 아름답다.

산소통에 부착된 호흡기를 생명줄처럼 달고 다니는 소녀 헤이즐(쉐일린 우들리 분), 삶을 즐기는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거듭되는 항암치료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암환자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매력적인 소년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 분)를 만난다.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어거스터스는 헤이즐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어린 나이부터 암과 싸우며 많은 것을 잃은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은 보는 이를 절로 숙연케 할 만큼 진지하고 절실하다.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과 떠나가는 이의 우려가 안쓰럽게 교차하고, 죽음과 대면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이 진실하게 담겼다.

짧은 사랑도 무한히 무거울 수 있음을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 안녕, 헤이즐 국내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원작은 재능있는 미국 소설가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아마존닷컴> 등 영향력 있는 여러 매체로부터 2012년 최고의 소설 가운데 한 편으로 꼽힌 이 작품은 얼마 남지 않은 삶 가운데 진실한 관계를 맺고 가치있는 고민을 하며 서로를 사랑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조쉬 분 감독은 매력적이고 위트있는 소설 속 대사를 영화로 그대로 옮겨왔다. 여기에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캐릭터를 입체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해 자칫 까다로울 수 있는 소설의 영화화 작업을 순조롭게 해냈다.

당찬 소녀 헤이즐과 그의 어거스터스는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기대주 쉐일린 우들리와 안셀 엘고트가 맡았다. 같은 해 개봉한 블록버스터 <다이버전트>에도 주연과 조연으로 함께 출연한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도 남녀 주인공을 맡아 각자의 필모그래피에 의미있는 작품을 새겨넣었다.

짧은 사랑도 무한히 무거울 수 있음을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 안녕, 헤이즐 근래 보기 힘든 조화를 보여줬던 헤이즐(쉐일린 우들리 분)과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 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하이틴 멜로와 진지한 드라마의 결합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은 헤이즐이 감명깊게 읽은 소설의 작가와 직접 대면하는 암스테르담에서의 에피소드다. 날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어 가던 헤이즐은 어거스터스 덕분에 작가와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 과정의 전환은 정말이지 흥미롭다.

이전까지의 전개가 산뜻하고 경쾌한 하이틴 멜로에 가까웠다면 이후의 이야기는 죽음과 현실이 전면에 드러나며 사뭇 진지한 드라마로 변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단순한 하이틴 멜로물에서 진지한 사랑영화로 뒤바꾸기에 충분하다.

윌렘 데포가 연기한 괴팍한 작가 피터 반 하우튼은 영화의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에게 흠잡을 데 없는 존경스런 작가이고, 그들을 암스테르담까지 초대하고 환상적인 식사를 준비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를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의 집에서 이뤄진 면담은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물론이고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충격적이기 짝이 없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메일을 통해 그들의 사연에 답한 건 반 하우튼의 비서였고, 작가는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두 젊은이를 괴팍하고 무례하게 대한다. 쫓겨나듯 나온 그의 집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팬레터가 버려지듯 쌓여있다.

짧은 사랑도 무한히 무거울 수 있음을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 안녕, 헤이즐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만큼 매력적인 주인공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 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자의 고통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에겐 못된 늙은이였지만 반 하우튼은 아픈 과거로 고통받고 있는 불행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병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로, 죽은 딸을 모델로 책을 썼지만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영화는 끝없이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반 하우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자의 고통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는 필연적으로 헤이즐과 그 가족, 또 어거스터스의 관계와 대비된다. 결국 영화는 헤이즐과 남겨진 친구들이 어떻게 어거스터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상실감을 극복해내는가로 이어지게 된다.

다음은 어거스터스의 장례식이다. 암이 재발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 어거스터스는 헤이즐과 친구 이삭(냇 울프 분)에게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빈 교회에서 오직 그들만을 위한 장례식을 시작한다.

이 자리에서 헤이즐이 읊은 어거스터스의 추도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과 2 사이라든지 0과 백만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아, 어거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헤이즐의 추도사는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의 삶이 세상의 다른 사람이들보다 훨씬 짧았지만, 그들의 삶 역시 남과 같이 무한대의 가치가 있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작음을 아쉬워한다.

서로의 무한대가 더 크기를 바랐던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안녕, 헤이즐>은 그들이 식당에서 마신 샴페인이 그랬듯 별처럼 맑고 아련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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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