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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자영업자도 국민입니다

[강남시선] 자영업자도 국민입니다
며칠 전 작은 가게를 하는 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의 우왕좌왕 코로나 방역에 거의 1년 반 (장사를) 공쳤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는 자영업자를 국민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절망감까지 묻어났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지금 자영업자는 벼랑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여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문 정부가 무리하게 속도전을 펼친 최저임금 인상이 주범이다. 집권 초기(2018~2019년) 2년간 27.3% 올랐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아시아 18개국 중 연평균 최저임금 상승률은 최고다. 게다가 지난 13일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9160원(5.1%)으로 올렸다. 집권 첫해 2017년(6470원)과 비교하면 41.6% 껑충 뛰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려고 집권 초반부터 신호를 무시한 채 마구 내달린 셈이다. 여기에 문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소득주도성장의 다른 한 축인 주52시간제까지 시행됐다. 그 결과 고용시장이 망가졌다. 자영업자는 인건비를 아끼려면 종업원부터 내보낼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기업도 임금이 오르면 신규 채용을 줄인다.

여기에 작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취약계층인 자영업자부터 집어삼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6월 종업원 있는 자영업자는 128만명으로 전년 대비 8만3000명 줄었다. 2018년 12월부터 31개월 내리 감소했다. 반면 지난달 고용원 없는 '나홀로 사장'은 430만명으로 전년보다 11만2000명 늘었다. 29개월째 연속 증가다.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본인 인건비조차 못 건지는 1인 자영업자가 수두룩하다.

올 상반기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은 전년보다 매출액·순이익·고용 다 쪼그라들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8일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소상공인 10명 중 6명이 휴·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급기야 내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고시되자 화가 난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자영업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쁘다. 이들은 "코로나보다 최저임금이 더 무섭다"고 아우성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도 정부를 성토하는 비판 글로 도배됐다. 전국편의점주협의회가 처음으로 불복종 방침을 밝힌 이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잇따라 고용노동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결정 과정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의견도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우리 경제의 가장 아픈 손가락 중 하나가 바로 영세 자영업자"라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5월 25일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 "초반에 최저임금을 너무 급격히 올려 일자리도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했다.


행여 노동계 눈치를 보는 거라면 그건 절망에 빠진 자영업자를 두 번 죽이는 격이다. 여권이 자영업자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최저임금위원회에 재심의를 촉구하는 게 맞다. 지금 자영업자의 분노는 임계점에 다다랐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