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뤄지고 있던 행위, 함정수사 아냐"
"경찰 요청으로 생긴 불법행위, 함정수사"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잠입수사 중이던 상황에서 경찰이 범행을 발견했다면 함정수사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경찰이 수사대상자를 속여 범행 자체를 유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공소기각은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심리와 무관하게 처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A씨는 지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게임점수를 현금으로 환전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게임장의 손님들은 적립된 게임머니를 이용해 다른 게임을 하거나, 손님들끼리 게임점수를 사고파는 등 사행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A씨는 이를 방치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범행은 손님으로 가장한 경찰관에 의해 적발됐다. A씨의 게임장에서 환전 영업이 이뤄진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8차례에 걸쳐 잠입시켰다. 잠입한 박모 경사는 2016년 9월 게임장 운영자 A씨로부터 획득한 게임점수 10만점을 환전해 달라고 요청했고, 현금 8만원을 받았다. 이후 A씨는 기소됐다.
경찰의 수사가 함정수사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함정수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는 경찰관의 지속적인 환전 요구에 따라 환전 요구를 한 측면은 있지만, A씨의 범행에 대한 범의가 수사기관의 함정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공소기각을 판결하며 “잠복수사를 담당하고 있던 경찰이 A씨를 압박하거나 위협했다”라며 “계속해서 환전을 거절하던 A씨로 하여금 결국 환전하게 만든 것은 범의를 갖고 있지 않던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계략을 써 범의를 유발하게 해 범죄인을 검거한 것으로 함정수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의 ‘사행행위 조장 혐의’와 ‘게임머니 환전행위’를 나눠 판단했다.
우선 사행행위 조장 혐의는 기존에 이뤄지고 있던 범행이 적발된 것이므로 함정수사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게임머니를 환전해준 행위는 경찰관에 요청에 따른 것이어서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경찰관은 다른 손님들과 게임점수의 거래를 시도한 적은 없다"면서 "이 부분 범행은 수사기관이 계략을 써 A씨의 범의를 유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뤄지고 있던 범행을 적발한 것에 불과하므로 함정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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