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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가상세계에서의 ‘디자인 보호’

[차관칼럼] 가상세계에서의 ‘디자인 보호’

최근 디자인보호법 60주년을 기념하는 가상현실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아바타(avatar)를 만들어 보았다. 20년 전 '싸이월드'의 미니미와 도토리에 대한 경험이 있던 터라 큰 어려움 없이 아바타 만들기에 성공했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필자를 닮은 아바타가 메타버스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흰색 티셔츠,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밀려들었다. 이런 느낌이 든 이유는 가상과 현실세계의 심리적 거리가 과거에 비해 무척이나 가까워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바타가 그냥 저 너머의 그림이 아니라 '나'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사회적 상황에 맞는 옷과 신발을 구입하고 싶어진 것이 아닐까. 이처럼 가상세계를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의 발전은 두 세계를 인식하는 경계를 점점 흐려지게 하고 있다.

희미해진 경계를 통해 현실세계와는 다르면서도 '현실 같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힘이 가상세계의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나이키 운동화, 구찌 가방, 삼성 휴대폰과 같이 현실의 제품들이 발 빠르게 가상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내 아바타가 가상세계 전시관에서 최근 출시된 자동차를 현실보다 먼저 타 보기도 한다.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를 맞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메타버스 속 한강 변에서 만나서 함께 거닐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구경하며 한국문화를 만나기도 한다. 나를 표현하는 아바타가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고 몰입하며 다른 이들과 소통한다. 이곳은 현실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덜 받기 때문에 매력적이며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경험을 제공하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길 것이다.

가상세계에서의 제품은 실제로 만질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것들이라서 다른 감각보다 시각적 감각에 크게 의존하는 특징이 있다. 눈으로 보고 느끼는 세상, 그곳에서는 디자인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메타버스 속에서의 디자인은 소규모 자본으로 접근할 수 있고, 구현 방법도 단순하니 누구나에게나 열려 있다. 가상세계의 디자인은 이제 현실세계의 디자인보다 더 큰 규모가 될지 모른다. 이런 변화의 시점에서,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세계와 같이 디자인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다양한 요구가 나타날 것이며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올해 12월이 되면 디자인보호법(옛 의장법)이 제정된 지 60년이 된다. 특허청은 디자인을 보호하고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호대상 확대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하려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올해 10월부터는 레이저 키보드, 벽면에 투사되는 시계같이 물리적 형태가 없는 디자인도 보호가 가능해지면서 가상세계의 디자인 보호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게 됐다.

법과 제도는 산업을 든든하게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늦게 제도를 지원하게 되면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며, 현실을 미리 앞서가는 제도는 오히려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내용물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릇이 돼 주는 게 중요하다. 지난 6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특허청은 가상세계 디자인 보호를 위한 산업계의 동향과 요구에 항상 귀를 열고 지원하고자 한다. 오늘은 메타버스 행사를 위한 맘에 드는 구두 한 켤레를 골라봐야겠다.

김용래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