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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모든 일은 때가 익어야 하는 법

[서초포럼] 모든 일은 때가 익어야 하는 법
이해만 따지며 아부하고 / 겉으로만 따르는 놈들은 / 비가 오기 시작하면 보따리 싸들고 / 폭풍우에다 당신을 버리고 가버려. ('리어왕')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은 나이 든 왕 리어가 딸들에게 영토와 권력을 이양하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려는 경솔한 결정에서 시작된다. 왕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모두 던져버리고도 이전과 같은 권력과 대우를 누릴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그의 비참한 운명의 단초다.

위 대사는 리어를 보살피며 수행하던 광대가 두 딸로부터 버림받고 황야를 헤매는 신세가 된 리어를 보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직언하고 있다. 그는 권력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주어버린 리어의 처지를 가장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다. 리어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자기중심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세상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리어는 늘 갑의 위치에서 일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황야에 내팽개쳐진 그는 폭풍우 속에서 딸들의 배신에 치를 떨며 배고픔과 추위에 떤다. 과거 그가 누렸던 모든 것이 부정되고,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사라진 "Nothing"이 돼서야 광대의 말뜻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아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한다. "너도 춥니? 나도 춥구나." 황야에서의 하룻밤이 그가 살아온 80여년을 지탱해왔던 아집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자신이 매우 어리석은 바보였음을 깨달은 그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을 터득한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막내딸의 죽음을 마주하며 그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아무리 아끼던 딸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과 하직함을 목격한다. 삶은 아무런 약속 없이 찾아온 선물이자, 동시에 아무런 예고 없이 어느 순간 가버릴 수도 있음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리어는 왕으로서 무한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자기중심적 욕망이 초래한 그의 비참한 여정은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한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단계에 이른다. 고통이 겸손과 인내를 가르쳤고, 그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었다.

사람은 이 세상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 저세상으로 갈 때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 무엇보다도 때가 익어야 해요.

사람은 태어날 때의 고통도 참고 견뎌야 하지만 죽음을 맞이할 때의 고통도 때가 돼야 다가온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자신이 우주 속의 미물밖에 되지 못함을 터득하는 순간 그는 역설적으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회복한다.

리어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딸들에게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서 그가 광대에게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이 있는가?" 자신이 누구였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리어다.

마치 많은 이들이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깨닫듯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자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와 있는가? 그 때가 익는 것은 언제쯤일까?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