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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발 물러선 매파 고승범, 긴축 연착륙이 과제

"전세대출 중단없게 할 것"
시장 놀라지 않도록 해야

[fn사설] 한발 물러선 매파 고승범, 긴축 연착륙이 과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4일 "실수요자들이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출 억제 고삐를 살짝 늦춘 모양새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사진=뉴시스

매파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대출규제 고삐를 늦췄다. 고 위원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자들에게 "실수요자들이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전세대출 증가로 (가계부채 증가율 연간 목표치) 6%대를 넘어서도 용인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일선 은행지점 등에서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지침을 고 위원장이 충실하게 수용한 모양새다.

고 위원장은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로 분류된다. 지난 7월 당시 고승범 금융통화위원은 기준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한 달 뒤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8월 말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그는 가계대출 억제 드라이브를 세게 걸고 있다. 취임사에서 고 위원장은 금융당국이 해야 할 첫 과제로 "최근 1년 반 동안 급증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론하며 "금융위기의 이면에는 모두 과도한 부채 누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계대출 급증세에 고삐를 죄려는 고 위원장의 충정을 이해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뒤 주요국은 앞다퉈 금리를 사상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그 덕에 경제는 파국을 면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 아래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그 결과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부채는 6월 말 기준 역대 최대인 1806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 대비 168조원, 10% 넘게 늘었다. 이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 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다만 우리는 긴축 전환이 시장에 충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누차 주문했다. 요컨대 긴축의 연착륙이다. 미국은 시중에서 유동성을 거둬들일 때 신중하기 그지없다. 언제쯤 자산매입을 줄이고(테이퍼링) 언제쯤 금리를 올릴 것이란 이야기를 당국자가 수도 없이 되풀이한다. 그렇게 해야 실제 테이퍼링에 착수하고 금리를 올렸을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한은과 고 위원장이 배워야 할 전술이다.

고 위원장은 은행에 당부하는 형식을 빌려 대출총량을 규제하고 있다. 한마디로 거칠다. 갑자기 대출이 끊기면 금융 수요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사실 가계부채 해법은 금융위가 아니라 한은이 쥐고 있다. 금융위가 진동한동 나서지 않아도 기준금리가 꾸준히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지면 가계빚은 저절로 준다.
이미 한은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11월 금통위에서 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14일 "현재 가장 중요한 게 가계부채 관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그 소신은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소신을 지키되 한은이 할 일과 금융위가 할 일을 슬기롭게 구분하기 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