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앞두고 쏟아지는 악재
바이든이 불붙인 '외교적 보이콧'
유럽·호주 등도 사절단 불참 예고
최대변수는 코로나 새 변이의 등장
국경봉쇄땐 '제2 도쿄올림픽' 우려
성공 개최로 3연임 안착 노린 시진핑
초청인원 줄이고 통제 강화할 수도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를 두 달 앞둔 5일 전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올림픽 성공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방역복을 착용한 의료진들이 베이징 국립실내경기장에서 중국 대학 아이스하키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 정부가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일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서방국가의 '외교적 보이콧'과 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이라는 양대 장애물을 만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보이콧은 무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오미크론은 초강역 봉쇄를 통해 국내 유입을 차단하면 되지만, 이럴 경우 자칫 도쿄올림픽처럼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이콧 해소 조치를 내놓거나 방역 고삐를 느슨하게 잡기도 사실상 어렵다. 서방국가의 보이콧 추진은 중국의 핵심 이익인 신장위구르 등 인권 문제 개선을 전제하고 있다. 이런 요구의 수용 자체가 인권 탄압을 중국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또 방역 완화는 이미 '전염병과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했던 시진핑 국가주석의 치적에 흠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개최가 난관에 부딪히면서 이때를 한반도 정세 완화의 계기로 삼으려던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왔던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보이콧 움직임에 동참하기도, 적극적인 올림픽 참여 의사를 표명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베이징올림픽이 한국을 또 다시 양자택일의 시험대에 올려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축제 기대하는 中 VS 서방은 "인권 먼저"
내년 2월4일부터 20일까지 17일간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친환경, 모두의 즐거움, 청렴, 개방 등으로 4개의 모토가 정해졌다.
이 가운데 '친환경'은 경기장을 재활용하고 친환경 기술과 전력을 사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청렴'은 과거 일부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을 의식해서 포함시킨 것으로 주요 외신은 해석하고 있다. 나머지 '모두의 즐거움'과 '개방'은 베이징올림픽이 세계의 스포츠 축제가 될 것이라는 중국의 기대감을 함축시킨 모토다.
베이징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공식 슬론건을 '함께 미래를 향해'라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세계 분위기는 중국 정부의 청사진과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오히려 베이징올림픽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 이슈로 부각되면서 신냉전 갈등을 재점화시키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동맹국들의 동참 가능성 표명, 국제적 관심 사안으로 급부상하는 양상이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선수는 참여시키되, 정부나 정치권 인사 등으로 구성된 공식 사절단을 개·폐회식에 보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현재까지 미국 외에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곳은 영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10여개국에 이른다. 미국과 3자 안보 파트너십 '오커스'를 결성하는 등 대중국 강경 기조를 보여 왔던 영국과 호주는 베이징올림픽 역시 동반 보이콧 추진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영국 정부 내에서 '적극적인'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고, 호주 언론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 정부가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선언하지는 않으면서 사절단을 베이징에 파견하지 않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미국의 정보동맹인 '파이브아이즈' 회원국도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 등이 지난달 24일 보도했다.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도 이튿날 "적절한 시기에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판단하겠다"며 동참 가능성을 시사했다. 자민당 보수성향 의원들은 외교적 보이콧을 정부에 촉구했다. 유럽의회는 홍콩과 티베트, 신장 인권 침해 등을 들어 유럽연합(EU) 기구와 회원국에 외교적 보이콧을 주문한 상태다.
■보이콧 뒤에는 '대중국 고립'
외교적 보이콧 은 선수들의 올림픽 참여는 보장하기 때문에 완전한 불참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올림픽은 단순히 스포츠 이벤트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림픽 기간 동안 정치·외교적 갈등에서 화해의 물꼬가 열리기도 하고 개최국은 당장 혹은 미래에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교적 보이콧은 오랫동안 대회를 준비했던 선수만을 고려한 스포츠 행사로 제한, 대중국 고립을 가속화하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보이콧은 장가오리 전 중국 부총리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 성폭행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성폭행 글을 SNS에 올렸다가 실종·탄압설을 받고 있는 펑솨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장가오리 부총리의 베이징올림픽 유치 관여 △IOC와 관계 등이 불거지며 논란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여자프로테니스투어는 중국에서 개최되는 모든 대회 개최를 보류한다고 했고, 남자프로테니스투어도 펑솨이 안전을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 사건에 대해 중국 정계의 비밀주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물론 중국 반응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스포츠를 정치화한다"고 반발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찬 발언을 내놓고 있다. 관영 매체는 "대규모 외빈을 초청할 계획이 없다"며 사전 방어막을 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다른 한편으론 홍보전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내외신 기자들 올림픽 경기장으로 초청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참석을 확정 시켰다. 일대일로(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육·해상 대외 확장 전략) 핵심 지역인 아프리카의 53개국에게는 백신·경제 지원을 당근책으로 '외교적 보이콧과 코로나19 정치화 반대'라는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다.
■또 다른 복병 '오미크론'
중국 정부 입장에서 다른 복병은 '오미크론'의 출현이다. 베이징올림픽이 6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국이 서둘러 국경을 차단하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한 것은 악재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미크론은 전염력이 기존 바이러스에 비해 최대 5~6배까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기업들이 서둘러 백신 개발에 나섰어도 임상시험까지 거치려면 언제 실용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미크론의 자국 내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이 먼저 올림픽 초청자 명단을 줄이거나 통제 강도를 더욱 상향 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통제·봉쇄 정책을 쓰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제로(0) 방역'이 목표다.
베이징올림픽은 그대로의 정치·경제·스포츠적 의미 보다는 내년 가을에 있을 제20차중국공산당 대회를 위한 징검다리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대회는 시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자리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시 주석이 직접 '코로나와 전쟁에서 승리'를 이미 선언하며 중국 안팎으로 자랑을 해놓은 상태다. 만약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재창궐하고 오미크론까지 겹칠 경우 시 주석의 공적은 반감된다.
중국 사회 특성상, 방역 고삐가 풀리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중국 정부가 오미크론을 두려워하는 이유로 꼽힌다.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에, 국경 봉쇄까지 강화할 경우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더욱 곤혹스럽다.
중국의 대표적인 호흡기 질환 전문가인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가 지난달 28일 한 행사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이제 막 출현했다.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전염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중증성이 심각한지 등은 상황을 봐야 한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 너무 이르다"고 밝힌 점도 이런 고민이 담긴 것으로 읽힌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