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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회색 코뿔소에 받히지 않는 법

[강남시선] 회색 코뿔소에 받히지 않는 법
금융시장에선 종종 동물이 등장한다. 무슨 얘기일까. 금융시장이 '동물의 왕국'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게 아니다.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동물이 비유적으로 사용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에 등장하는 단골은 매와 비둘기이다. '매파'는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인상을 주장한다. 반면 '비둘기파'는 경제성장을 위한 금리인하를 지향한다. 증시에서 '황소장'은 상승장이고, '곰장'은 약세장이다. '회색 코뿔소'도 있다. 회색 코뿔소는 지난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대표가 처음 발표했다. 회색 코뿔소는 몸집이 커서 멀리 있어도 눈에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 위험을 부인한다는 의미다.

올 들어 우리나라에도 '회색 코뿔소 경고령'이 내려졌다. 우리가 직면한 회색 코뿔소로는 가계부채, 물가상승, 미국 연준 양적긴축, 코로나19 확산 등이 꼽힌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지난 13일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에서 '회색 코뿔소'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했다. 여러 회색 코뿔소 중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이다. 벌써 가계부채는 총 1800조원까지 치솟았다. 이런 와중에 물가도 치솟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로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자, 한국은행은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은 여전히 코뿔소처럼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는 형국이다.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란 '화살'을 쐈더니 대출 이자부담이라는 또 다른 코뿔소를 불러들인 것도 문제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차주의 추가 이자부담은 연간 3조~6조원이다. 문제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인 소상공인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은 584조원에 달한다. 올해 3월엔 소상공인 코로나19 대출 연장도 종료된다. '3월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다.

이뿐 아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금융 포퓰리즘'도 '회색 코뿔소'로 여겨진다. 여당 대선후보는 1000만원 내외의 금액을 대출해주는 정책을, 야당 대선후보도 자영업자 채무조정 90%까지 확대 정책을 각각 제시했다. 서민과 소상공인들을 배려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게 뻔하다.

지금 우리 금융시장은 위기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대내외 금융 위험이 한꺼번에 몰리면 '제2의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다가올 위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끝으로 미셸 부커가 제시한 회색 코뿔소 대응법을 소개한다. '인지하라''성격을 규정하라''제 자리에 머물지 말라''전화위복으로 삼아라'….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