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곽인찬의 특급논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올까?

[곽인찬의 특급논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올까?
지난 3일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세종 조치원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현판 선물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요약
·문재인 대통령도 두번 공약했으나 포기
·윤 당선인이 보류해도 놀라지 않을 것
·세종 제2 집무실에 집중하는 건 어떤가

[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다. 어쩌면 윤 당선인에게 청와대 방문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청와대를 '해체'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라는 명칭도 폐지한다.

'광화문 대통령'은 국민 곁에서, 국민과 늘 소통하며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다. 흠잡을 데 없다. 새 관저는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이 유력하다. 앞으로 시민들은 매일 관저에서 집무실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광화문 대통령에 대한 의지는 문 대통령도 윤 당선인 못지 않게 컸다. 그러나 결국 청와대 나가는 걸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文, 두번이나 공약했으나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겠다"며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고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는 2013년이면 다수 부처들이 세종시로 이전하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 공약은 그냥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문 후보가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졌기 때문이다.

2017년 문 후보는 다시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꺼냈다. 4월,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맡았다.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선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1년8개월 뒤, 2019년 1월 문 대통령은 공약을 파기했다. 유홍준 광화문시대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이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 위원은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집무실 이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뒤 장기적인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이렇게 깨졌다.

유 위원은 문 대통령이 "이심전심으로 우리들이 가진 고민을 이해하셨다"고 말했다.

◇유홍준이 밝힌 속사정

[곽인찬의 특급논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올까?
2017년 4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당시 문 후보는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 위원장에 유 전 청장을 임명했다. 사진=뉴스1

유 자문위원은 공약을 백지화한 이유를 몇가지 댔다. 경호, 안전, 비용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광화문으로 나오면 대통령 근무지에서 100m 내 접근을 금지하는 집시법 때문에 오히려 소통이 끊길 수 있다는 지적도 여러번 들었다.

기자회견 말미에 유 위원이 귀를 잡아끄는 얘기를 했다. 집무실 이전에서 '제일 큰 걸림돌'은 "(새 집무실이) 현재 대통령만 살다 가는 집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현 대통령이 (이전안을) 다 만들어 놓고, 자기는 안 살고 다음 대통령더러 여기 살아라 하는 건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청와대는 5년마다 입주자가 바뀌는 집이다. 현 대통령이 제 뜻대로 거처를 새로 정하고, 후임자더러 자기가 정한 데서 살아라 하는 건 어쩐지 예의에 어긋나 보인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다. 그 거주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정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어차피 세종에 제2 집무실

윤 당선인은 세종에 제2 집무실을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후보 시절 "세종시 집무실에서 격주로 국무회의를 열고 행정부 업무보고는 물론 중앙·지방 협력회의도 이곳에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 집무실은 오는 8월 준공을 앞둔 어진동 정부세종신청사에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후보도 세종 집무실 공약을 내놨다. 그런 만큼 집무실 설치에 여야 간 이견은 없다.

다만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개정이 선결과제다. 현행 법은 세종시로 이전하는 행정기관에서 '대통령'을 제외했다. 정진석 국회부의장(국힘)은 지난해 12월 바로 이 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국토교통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도 세종 시대를 향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작년 9월 분원 곧 세종의사당 설치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분원은 2024년 착공해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27년 완공 예정이다. 국회 상임위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옮긴다. 국회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도 이전한다.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청와대 자체를 세종으로 옮기는 것도 검토 대상이다. 하지만 이는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헌재는 대통령과 국회, 그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집무실을 몽땅 옮기면 관습헌법 위배다. 지금으로선 서울에 주집무실, 세종엔 제2 집무실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공약 보류해도 놀라지 않을 것

[곽인찬의 특급논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올까?
지난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세종 조치원 역 앞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 더 큰 세종!”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을 만나면 왜 공약을 지키지 못했는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꼭 물어보기 바란다. 이런 정보공유야말로 협치다.

3년 전 문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했을 때 여론도 난리를 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약 파기를 비판은 하되 경호, 안전, 시민 불편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임기 첫날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국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뜻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나가는 걸 잠시 미루겠다고 양해를 구해도 나는 놀라지 않겠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거처 변경은 신중할수록 좋다. 벌써 집무실을 광화문이 아니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인수위 내부에도 이견이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광화문보다 세종 제2 집무실에 더 힘을 쏟는 게 낫지 않을까.

[곽인찬의 특급논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올까?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