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테헤란로] 최저임금 차등화 논의, 지금 필요한 이유

[테헤란로] 최저임금 차등화 논의, 지금 필요한 이유
"어차피 안될 게 뻔한데 괜한 기싸움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한마디로 '이게 되겠느냐'는 거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심의에서 업종별 차등적용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듯 보인다.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올해는 혹시'라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그야말로 '식은 감자'다. 노동계의 결사반대로 노사 합의는 절대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노·사·정 위원 각 9명씩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한다. 업종별 차등적용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노동계의 찬성표가 필요한데, 애초에 노사 합의라는 아름다운 그림은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올해 업종별 차등적용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시간끌기라는 뒷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정말 쓸데없는 소모전일까.

올해 당장 실현되지 못할지라도, 최저임금 차등화는 꾸준히 논의해야 할 가치가 있다. 우선 30년 이상 지속돼 온 일괄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맞물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가 지난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전체 근로자 2099만명 가운데 무려 321만명(15.3%)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였다. 미만자가 많다는 건 그해의 최저임금 수준이 현장에서 수용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난 2001년 57만명에 불과했던 최저임금 미만자는 20년 만에 263만명이 늘어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다.

돋보기를 들고 보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업종별로 미만율 차이가 50%p 이상 벌어진 것이다. 농림어업이나 숙박음식업의 미만율은 각각 약 50%로 이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 2명 중 1명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종별 상황이 크게 달라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정보통신업 미만율이 1%대인 것과 극명한 차이다. 더욱이 최저임금이 높아질수록 이 같은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병에 약이 듣지 않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곤 한다. 물론 곰곰이 따져보고 최선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30년 이상 지속된 획일적 최저임금으로 인해 문제가 곪아가고 있다면,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할 시점이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다. 이를 위해선 치열한 논의와 검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 업종별 차등화를 실현하려면 업종별 상황을 따져봐야 하는데 이 역시도 하루아침에 하기엔 만만치 않다. 한국표준산업분류를 보면 대분류에만 21개 업종이 있다. 그렇기에 업종별 차등적용 공론화는 '우기기'가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검토 과정'으로 지켜볼 만하다.


최저임금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규정이다. 근로자는 물론 시장과 기업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큰 제도다. 취약계층 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면서도,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imne@fnnews.com 홍예지 경제부 차장